인력·점포 구조조정 속도차 … 고객 대기 늘고 공간은 비어점포·인력 손봤지만 구조는 그대로 … '칸막이 창구'가 만든 비효율
  • ▲ ⓒ챗GPT
    ▲ ⓒ챗GPT
    은행 영업점 곳곳에 비어 있는 창구가 늘어나고 있다. 점포 통폐합과 공간 재배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인력 감축 속도가 이를 압도하면서 실제로 운영되는 창구 수는 체감적으로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창구는 남아 있는데 직원은 줄어드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영업점 내 공간 활용 효율은 떨어지고 고객 대기 시간은 오히려 길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비대면 거래 확산과 비용 효율화 기조에 따라 영업점과 이에 따른 인력을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 모바일·인터넷뱅킹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단순 창구 업무 수요는 감소했지만, 물리적 점포 구조는 여전히 과거 대면 거래 중심 설계에 머물러 있다. 공간과 인력을 재배치하면서도 과거의 '칸막이형 창구'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해 미사용 공간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발단은 은행권의 인력 구조조정 흐름과 맞물려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에서 지난해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난 인원은 2027명으로, 전년 대비 약 30% 늘며 최근 5년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신규 채용은 빠르게 쪼그라들고 있다. 4대 은행의 신입 채용 규모는 2022년 1663명, 2023년 1880명에서 2024년 1320명으로 줄었고, 2025년에는 1170명까지 감소했다. 

    문제는 인력 감축 속도에 비해 점포 구조조정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들은 과거 매년 100곳 안팎의 점포를 줄여왔지만, 최근 들어 그 속도가 뚜렷하게 느려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점포 감소 규모는 2021년 237곳, 2022년 199곳, 2023년 62곳, 2024년 84곳으로 집계됐다. 

    점포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배경에는 규제 환경 변화도 있다. 지난 2023년 금융당국이 영업점 폐쇄 절차를 까다롭게 바꾸면서, 은행은 점포를 닫기 전에 이용 고객 의견 수렴과 대체 수단 마련, 사후 평가까지 거쳐야 한다. 여기에 올해부터 은행 대리업이 시범 도입되면서, 당국은 대리업 운영 지역 인근 점포 폐쇄를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은행 창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효율은 단순히 인력 감축과 점포 축소의 속도 차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영업점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공간 설계 역시 과거 틀에 머물러 있는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대면 거래 비중이 높아지면서 창구 방문 고객 수 자체는 줄었지만, 방문 목적은 오히려 더 복합적으로 변했다. 입출금이나 이체와 같은 단순 업무는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반면, 대출 상담, 자산관리, 상속·증여, 고령층 지원 등은 여전히 오프라인 영업점에 의존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업점 내부 동선과 공간 배치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수의 창구 칸이 일렬로 배치된 구조는 빠른 처리 중심의 업무에는 적합했지만, 현재처럼 상담 중심 업무 비중이 높아진 환경에서는 오히려 비효율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영업점에서는 창구가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담 인력이 부족해 고객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대기 공간에는 고객이 몰리는 반면, 창구 공간은 활용되지 않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영업점 전체의 체감 혼잡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상담 시간이 긴 고령층 고객이나 금융 이해도가 낮은 고객일수록 불편을 크게 느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은행 영업점 운영의 방향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이 줄을 서서 창구로 이동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며 “앞으로는 고객이 자리에 앉아 있고, 직원이 이동하며 상담하는 구조가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단순 거래는 비대면으로 처리하고, 오프라인 영업점은 상담과 체류형 서비스에 맞게 공간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됐음에도 오프라인 영업점의 공간 전략은 이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모바일 서비스 고도화, AI 상담 도입 등 기술 측면에서는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고객이 직접 방문하는 영업점은 과거의 업무 방식과 공간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술은 앞서가는데, 영업점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여전히 부재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은행권 안팎에서는 향후 영업점의 역할 재정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창구를 유지할지 줄일지의 문제가 아니라, 남는 공간을 어떻게 고객 경험 중심으로 전환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