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한도 하향에 실수요 외면…집주인들 매물 처분·월세 전환RTI 규제에 시장 내 위기감 고조…낮은 사업성 탓 민간업체도 '손절'PF 자금 조달 산 넘어 산…기존 매물 활용·신축 공급 모두 지지부진
  • ▲ 신축 빌라 분양 홍보 현수막. ⓒ뉴데일리DB
    ▲ 신축 빌라 분양 홍보 현수막. ⓒ뉴데일리DB
    빌라 시장 침체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세사기 사태 재발에 대한 부담감과 아파트 대비 낮은 환금성 및 주거 품질 등 이유로 빌라 수요가 바닥을 기고 있어서다. 최근 거래량이 소폭 늘긴 했지만 이는 지난해 저조한 거래실적에 따른 기저효과일 뿐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설상가상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문턱을 높이는 '126% 룰'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공급마저 멈춰섰다. 최근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가 전세난 해법으로 빌라 공급을 제시했지만 시장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공수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쏠림 현상과 빌라시장 침체 주요 배경으로는 공시가격 126%룰이 꼽힌다.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는 전세보증 한도를 공시가격 126%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예컨대 공시가격 3억원인 주택은 임차보증금과 선순위 채권 합계가 3억7800만원을 넘으면 보증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여기에 근저당까지 1억원 설정돼있다면 보증한도는 2억7800만원으로 줄어든다.

    보증보험 가입이 막힌 매물은 세입자를 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세사기 사태 여파로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전세 매물은 계약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된 까닭이다.

    문제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더라도 126%룰로 한도 자체가 낮게 설정된 탓에 세입자의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세대·연립 등 빌라는 아파트 대비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아 공시가격도 시세 대비 낮게 형성되고 이로 인해 보증보험 가입요건을 맞추기가 더욱 까다롭다. 집주인들이 보유 중인 매물을 처분하거나, 월세로 돌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다주택자에 이어 임대사업자 때리기에 나서면서 빌라 시장 내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임대사업자 대출 만기 연장시 임대소득 대비 이자상환비율(RTI)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제도에서 규제지역은 RTI 1.5배, 비규제지역은 1.25배 조건을 충족돼야 대출을 연장할 수 있다. 즉 규제지역을 기준으로 임대사업자의 연간 이자 비용이 1000만원일 경우 임대소득이 15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만기 연장이 안돼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빌라는 상대적으로 공실률이 높고 임대수입도 낮아 해당 제도 시행시 직격타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 장기매입임대주택 28만여가구 가운데 84% 가량인 4만여가구가 빌라 등 비아파트"라며 "1가구 1주택 정책 목표에만 매몰돼 임대사업자 규제를 강화할 경우 비아파트 공급난은 필연적"이라고 지적했다.

    빌라 신규 공급도 제자리 걸음에 머물러 있다. 현저하게 낮은 수요 탓에 빌라를 신축하려는 민간 사업자 수가 급감했고 수익성 악화로 PF를 통한 사업비 조달도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소규모 시행사나 개인 건축사업자가 짓기 때문에 자금 경색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 같은 시장 분위기라면 신축 빌라를 지어도 공실이 나올 게 뻔한데 누가 섣불리 사업에 나서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0년대 이후 빌라 사업 수익성이 급감했고 전세사기 사태까지 겹쳐 금융권 PF를 통한 사업비 조달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빌라 신규 공급이 멈춰선 것은 지표로도 확인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게재된 지난해 주택건설 인허가실적을 총 37만9834가구 가운데 빌라는 1만2706가구로 전체의 3.3%에 불과했다.

    전세사기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인 2021년에는 전체 53만5971가구 가운데 6만3574가구(11.9%)가 빌라였다. 불과 4년 만에 빌라 공급 비중이 3분의 1 수준으로 위축됐다.

    즉 빌라는 임대업자 기존 매물을 활용한 공급과 신축을 통한 공급이 모두 지지부진한 교착 상태에 빠진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수요와 공급이 모두 곤두박질 친 현 시장 상황에서 빌라로 전·월세난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며 "비아파트 관련 규제를 풀어 수요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