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의 ‘북한 핵무기 보유’라는 놀라운 발언이 담긴 문건이 해외에서 공개되고 국내 언론이 이를 받아 '대서특필'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결국 '작문'인 것으로 밝혀져 24~25일 이를 보도한 국내 언론 매체들은 대북 관련 최악의 오보를 한 오명을 남기게 됐다.

    미국의 동북아안보전문 싱크탱크인 노틸러스연구소가 최근 홈페이지(www.nautilus.org)에 개재한 문제의 글('Webbit in Free Fall')은 에세이 형식으로 미국 정보조사국에서 북한 업무를 담당했던 로버트 칼린이 썼다.

    이 글에서 칼린은 “북한 외교부 제1부상 강석주가 지난 7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의 재외공관장회의에서 ‘북한은 핵무기 5,6기를 가진 상태에서 멈출 수 있었다면 다시 돌아오는 길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워싱턴은 대답이 없다. 이제 외교는 끝났다. 6자회담은 시작부터 희망이 없었다. 핵실험을 할 지 우리도 모른다’”고 썼다. 그러나 이는 강석주의 부상의 연설이 아닌 칼린이 지어낸 가상의 이야기인 것으로 판명 났다.

    칼린의 글에는 ‘에세이, 창작한 글’이라고 표시돼 있지만 최초로 관련 기사를 올린 기자가 번역하는 과정에서 강석주의 발언으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칼린은 지난 14일 브루킹스연구소와 스탠퍼드 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북한관련 세미나에서 이 글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 유력 조간 신문들은 이 글에서 나오는 강 부상의 발언을 사실로 판단, 북한이 핵무기를 적어도 5~6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비중 있게 기사화해 25일자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동아일보는 <강석주 ‘북외교는 추락하는 토끼’>라는 25일 1면 기사에서 강석주가 북한의 외교 정책에 대해 자책성 발언을 했다고 소개했다. 동아일보는 또 2, 3면에서도 강석주의 발언을 자세하게 전했다. 이 신문은 특히 3면 전면을 할애해 '강석주 발언'을 실었다. 이 밖에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도 이날자에 비중 있게 기사를 다뤘으며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도 시내판에 관련소식을 추가해 보도했다.

    그러나 24일 밤 이 '기사'를 가장 먼저 보도한 연합뉴스는 25일 새벽 5시경 “노틸러스연구소에 실린 강석주의 연설 관련 글은 칼린이가 구상한 얘기인 것으로 드러났기에 보도를 전면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MBC가 아침뉴스에서 칼린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오보임을 입증하면서 이번 사건은 희대의 오보사건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같은 날 오전 11시경 “‘강석주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보다 더 솔직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한 다른 전문가의 확인을 거쳐 관련기사를 송고했다”며 “칼린의 해당글이 다소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내용 자체가 그 진위를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 내부의 현 상황과 흡사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 포털사이트들도 이 보도를 중요하게 다루는 실수를 범했다. 25일 오보로 판명된 이 기사의 정정기사가 신문 인터넷판에 나간 후에도 ‘핵무기 보유’ 발언 관련 기사가 포털에 올라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특히 서울신문 기사는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오보 기사가 올라간 지 한참이 지난 후인 8시 51분경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오보 '참사'는 최소한의 확인조차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한국언론의 관행을 맹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번 사태는 사실확인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고 처음 보도한 통신사의 잘못이 크지만 이를 의심하지 않고 없이 받아 내보내는 일부 신문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