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증권선물거래소 감사 후보추천위원장 권영준 경희대 교수가 정부 외압을 비판하며 그제 전격 사퇴했다. 그는 “청와대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 정부 관계자가 특정인사를 감사 후보로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함께 사퇴한 정광선 후보추천위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명백한 인사청탁이자 외압이다.

    유능한 인재를 뽑기 위해 구성한 후보추천위가 이런 식으로 운용된다면 존립할 명분도 가치도 없다. 정부는 불과 2개월 전 유진룡 문화부 차관 경질 이후 불거진 낙하산 인사 논란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사실을 벌써 잊었는지,그렇지 않다면 ‘국민이 뭐라든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야말로 국민을 우습게 아는 처사다.

    오죽하면 후보추천위원장이 “법과 원칙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내정설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이 응모를 기피한다”고 했을까. 증권선물거래소는 5·31 지방선거 당시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일했던 386 인사를 감사로 내정했다가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감사 선임에 두 차례나 실패했다. 앞서 2004년 초대 이사장 선임 당시 공모에 응했던 후보자들이 외압논란 끝에 사퇴했는데 감사마저 외압으로 분탕질된다면 미래는 뻔하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증권거래소, 코스닥증권시장, 선물거래소를 통합한 자본시장의 중추다. 시가총액이 710조원을 넘고 투자자가 700만명을 넘는다.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감사 자리를 전리품 나눠주듯 해선 결코 안된다. 정치적 논란이 있긴 했지만 동북아 금융허브를 꿈꾸며 설립하지 않았던가.

    정부 압력으로 감사를 뽑는 것은 공모(公募)가 아니라 공모(共謀)다. 정부는 낙하산 투하시도를 당장 그만두고, 해당 기관은 후보추천위를 새로 구성하라. 또한 청와대의 어떤 인물이 정부부처에 뜻을 전달했고, 이 뜻을 전달받고 증권선물거래소에 압력을 행사한 정부 관계자가 누군인지 밝히라. 패가망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