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장규 시사미디어 대표이사가 쓴 '한국 자동차가 망하는 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일본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싸구려 생산 과잉으로 곧 망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전혀 틀린 분석이었다. 망하기는커녕 일본이나 독일 차와도 맞먹는 세계적인 수준에까지 올랐느니 말이다. 책까지 펴냈던 당시의 일본 자동차 전문가 아무개는 섣부른 전망으로 크게 망신을 당했었다.

    이 엉터리 전문가는 현대자동차를 잘못 봐도 크게 잘못 봤던 게 틀림없다. 죽을힘을 다해 애를 쓴 것도 아니고, 파업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자동차는 잘 팔리고 이익은 이익대로 늘리는 회사를 두고서 곧 망할 것으로 예측했으니, 영 잘못 본 것이다. 노사 갈등으로 회사가 아무리 소란을 떨어도 멈췄던 생산라인이 다시 돌기만 하면 이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게 현대자동차였다. 파업 탓으로 장사가 안 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번번이 노조 주장이 당당하게 관철됐고, 회사는 엄살만 부리다가 속절없이 끌려다녔다. 그런데도 회사가 잘 돌아갔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도대체 무슨 기발한 경쟁력을 지녔기에 고임금과 상습 파업 업체라는 낙인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는 이런 기적을 이뤄냈을까. 부품업체들을 쥐어짰든, 어떤 비법을 동원했든 간에 지금까지의 실적만 놓고 보면 현대차는 누가 뭐래도 잘나가는 회사요, 한국 경제의 으뜸가는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일본의 자동차 관계자들은 이번에야말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진짜 고꾸라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의 망신스러운 경험을 의식한 나머지 공개적으로 떠들지 않는다뿐이지, 자기네끼리는 한국 자동차 멸망 시나리오가 쫙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진단을 요약하면 "한국 자동차는 망하는 코스를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기업이나 노조나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패망은 필연"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10년 전의 전망은 왜 틀렸었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의 단합과 분발을 과소평가했다"고 했다. 이어진 대답에서 "그런데 지금은 단합과 분발은 고사하고 작업의 현장이 일터가 아니라 전쟁터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 10년 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런 회사는 조만간 망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다.

    굳이 일본 전문가의 관측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 현대자동차의 미래를 진작부터 걱정해 왔다. 한국 차가 일제 차보다도 비싸지고, 국내 시장조차 중국 차 · 인도 차가 쏟아져 들어오는 날에는 무슨 수로 견뎌낼 수 있겠나. 목숨 걸고 매달려도 신통찮을 판에 걸핏하면 파업이나 해대는 회사의 미래가 어찌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뻔하다. 미국의 최고 자동차회사들이 왜 저 지경이 됐고, 독일 자동차회사가 어떤 식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의 도요타조차 허리띠 졸라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가 연일 신문에, 방송에 귀가 따갑도록 보도되고 있는 판인데, 유독 한국만 갈등과 투쟁으로 점철하고 있으니 덧붙일 이야기도 없는 형편이다.

    공교롭게도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금의 위세를 누리게 된 데는 DJ정권 초기 정치인 노무현 의원의 적극적 지원이 결정적 계기가 됐었다. 지금의 대통령이 당시에 충돌의 울산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정부의 공권력 집행을 저지하고 노조 편을 들면서부터 극적으로 판도가 달라졌던 것이다. 노동 변호사 활동의 연장선에서 그가 늘 억울한 노동자의 편에서 함께 투쟁했던 시절이다. 그 이후에도 노 대통령은 자신의 노사분규 수습 공적으로 당시 활약상을 자주 자랑하곤 했었다.

    그러했던 노 대통령이 오늘의 현대자동차 사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국 자동차가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망하는 코스를 질주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야말로 갈등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혹시 안 드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