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쓴 시론 'UCC문화와 대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User Created Content)가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UCC란 인터넷 이용자들이 직접 생산하거나 가공한 콘텐트를 일컫는 말이다. 넓게는 게시판 댓글에서부터 이용자가 인터넷에 올리는 모든 콘텐트를 지칭한다. 좁게는 블로그, 미니홈피, 동영상, 기사형 댓글과 같은 미디어형 콘텐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개념은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전통적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읽기 중심의 초기 인터넷 문화와의 차별성을 담고 있다.

    초고속 통신환경,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개인 창작 미디어의 보급, 보다 손쉬워진 저작 소프트웨어의 등장, 그리고 블로그나 미니홈피와 같은 개인형 웹 서비스의 확대와 이들 서비스 간의 네트워킹 등이 UCC 확산의 주요 배경이다.

    UCC는 인터넷에 의해 변화된 정치적 역학관계를 반영한다.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기가 발명된 이래 미디어 콘텐트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분리되어 왔다. 그러나 UCC는 이를 결합하고 있다. 개인들은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전파하기 시작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가듯'이 저널리스트를 매개하지 않은 콘텐트와 사회 의제들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UCC가 유통되는 메커니즘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집단적 가치와 선호가 작동한 결과물로서 그 도달 범위와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여론 형성 과정에서 개인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시민의 의제와 미디어 의제가 균형을 이루게 된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UCC가 선거 과정에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높은 수준의 직업규범이 작동되는 기존 미디어와 다르게 UCC는 전적으로 개인의 윤리규범에 의존한다. 합리적인 집단지성과 자기정화 시스템이 작동하기에는 UCC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로 인해 인격권이나 저작권 침해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도 나타난다.

    UCC 문화에서는 어떤 사안의 맥락보다 일회적 에피소드가, 정보나 이성보다 감성이, 정상적인 것보다 일탈적인 것이, 예측 가능한 것보다 기대를 반전시키는 것이, 포지티브한 것보다 네거티브한 것이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유통되는 동영상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이용자의 선호를 극단적으로 반영해 창조, 또는 재구성되는 특성이 있다.

    이념이나 맥락보다 특정 현상에 쉽게 열광하고 몰리는 '감성적 공중'의 등장 역시 UCC 현상과 관련이 있다. 정보와 대화는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는 핵심 요소이지만 UCC 문화는 표현의 카타르시스를 채워줄지언정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대화의 공간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UCC가 갖고 있는 이러한 '맥락과 대화가 부족한 감성적 카타르시스 문화'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정말 우려스럽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책이나 비전보다 작은 실수 하나가 후보자 이미지를 뒤바꿀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미국 중간선거 때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의 한 사람인 조지 앨런 상원의원은 유세 중 무심코 던진 인종차별적 발언이 동영상으로 촬영돼 유튜브에 배포되면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미 각 선거 진영에서는 UCC를 이용한 입소문 마케팅과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선거 전략도 준비하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소문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UCC가 미디어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목격되는 불안한 현상들은 기술에 뒤처진 일시적인 문화지체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진화의 방향을 과도하게 예단할 경우 과잉규제 현상이 생긴다. 따라서 진화의 역동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 열쇠는 인터넷 기업과 이용자의 자율적 책무를 강화하는 데 있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가 먼저 공론화할 사안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