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기자의 눈'에 이 신문 정연욱 기자가 쓴 <“난 간신 아닌 사육신” 양정철의 궤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나는 정부와 언론 관계를 더 선진화된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한 사육신(死六臣)이 되면 되었지 간신은 아니다.”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31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언론계와 학계 정치권 등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온 브리핑룸 통폐합 정책 입안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받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양 비서관 등을 겨냥해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간신”이라고 비판하자 ‘사육신’ 발언으로 반박한 것이다.

    사육신이 누구인가. 사육신은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낸 데 반발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처형당한 성삼문 등 6명의 충신이다. 이들은 왕위를 빼앗은 세조(수양대군)에게 목숨을 걸고 직언(直言)을 마다하지 않으며 충절을 지켰다.

    언론노보 기자 출신인 양 비서관은 1994년 나산그룹 홍보실을 거쳐 1997년 한보사태 때 정태수 총회장의 홍보 업무를 맡아 언론인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이후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에 근무하다 내부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러나 청와대 근무 후 1심 승소에 이은 서울고법의 조정으로 2억여 원을 배상받았다. 그는 2005년 8월 삼성그룹에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의 비용 문제 등을 ‘협의’한 사실이 드러나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이력을 볼 때 양 비서관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주도하고서 충절의 상징인 사육신에 비유한 것은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정부 조치에 대한 언론계의 반발을 정책에 대한 ‘오해’로 치부했지만 이는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이날 정부의 조치를 “희대의 언론탄압 행위”라고 비판한 한국기자협회 성명에 서명한 중앙 언론사 지회는 전체 39개 중 37개에 달했다. 현 정부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일부 언론 유관단체들도 이미 반대 의견을 냈다.

    현 정부는 초기부터 언론사들의 편 가르기를 통해 ‘재미’를 봤지만 이번에는 언론사가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을 양 비서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번 조치는 정부와 언론 관계를 더 선진화하려는 것”이라고 계속 강변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며 기사송고실 폐쇄 검토를 지시한 데 대해선 “오해나 왜곡이 많으니까 행정부 수반으로서 안타까움과 유감의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두둔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31일 논평에서 “양 비서관은 언론 탄압을 지시하는 노 대통령에게는 ‘사육신’일지 모르나 취재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알 권리를 억압받고 있는 국민에게는 ‘간신’일 뿐”이라고 말했다.

    양 비서관은 엉뚱한 비유로 사육신을 욕되게 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