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에 이 신문 허엽 문화부 차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PD연합회가 지난달 31일 마련한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해 방송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복잡한 인과관계는 기자들이 다 쓸 수 없고 PD들이 긴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다”며 “기자들이 오라면 안 가고 PD들이 오라면 간다”고 말했다. 하루 전 전국 47개사 편집·보도국장들이 현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언론 탄압”으로 규정하고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내놓은 데 이은 발언이었다.

    PD들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모른다. 다만 PD들이 ‘PD 저널리즘’의 이름으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언론 기능을 해온 것에 비하면 노 대통령의 발언이 마냥 달갑진 않을 듯하다. 저널리즘의 본분이 정권이나 권력에 대한 감시가 아닌가?

    PD연합회의 양승동(KBS PD) 회장은 “(대통령의 말은) 덕담으로 보여 어떤 견해를 밝힐 필요가 없다”면서도 “기자에 대해서도 좋은 말을 했더라면 괜찮았는데 지나치게 대비시키는 바람에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 PD는 “대통령 특유의 수식어이겠지만 우리가 왜 그런 박수를 받았는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방송에 대해 애정을 표현한 적 있다. 2003년 3월 KBS 공사창립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방송이 없었다면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방송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MBC 등 지상파와 갈등을 겪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FTA를 놓고 의견이 많이 달랐지만 토론을 거쳐 점차 수렴해 가고 있다”며 갈등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 정부와 신문의 갈등은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는 출범 초기 ‘언론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브리핑 시스템을 거쳐 최근에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으로 취재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 신문 시장에 대한 유·무형의 압박도 지속하고 있으며 기자의 직업적 자존심도 훼손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기자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PD연합회 기념식에서 “옛날에는 편을 갈라서 싸우던 언론이 저한테 대해서는 전체가 다 적이 됐다. 그래도 저를 편들어 주던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언론도 일색으로 저를 공격한다”며 갈등이 확산된 점을 안타까워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신문과 방송에 대한 태도가 전혀 다른 것을 두고 “대선을 앞두고 방송에 뭔가 기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가 지난달 15일부터 지상파 뉴스를 감시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른사회 시민사회’ 등 여러 시민단체도 3일 ‘KBS 수신료 인상 저지 국민행동’ 발족식을 열고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했다.

    방송에 대한 불신이 가시지 않은 이유는 현 정부 출범 이후 편향 지적을 받은 이른바 ‘개혁 프로그램’이나 탄핵 방송 등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방송이 정권의 칭찬을 듣는다면 시민단체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셈이다. 노 대통령의 ‘방송 예찬’이 양승동 PD연합회장의 말대로 단순한 ‘덕담’으로 받아들여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