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송희영 논설실장이 쓴 '강만수 장관이 진짜 사면 받는 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새 경제부처 장관들 중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설명해 줄 조언자가 가장 절실한 인물은 아무래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인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으로서 그는 대선 때부터 여러 정책 구상을 언급해 왔다. 그 중에는 시대 흐름에 적합한 내용도 있지만, ‘어떻게 저런 발언이 걸러지지 않은 채 나오는가’ 하는 것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환율 주권론(主權論)이다. 그는 “환율에 관한 한 장관이 거짓말할 권리가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환율을 시장에만 맡기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시장 개입과 고정환율제가 바람직한 선택인 것처럼 시사했다.

    얼핏 듣기에는 통쾌한 말이다. 외환위기까지 겪은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쩌면 ‘미국 투기 자본의 농간에 더 이상 당해서는 안 된다’ 거나 ‘달러가 머니 마켓을 지배하는 패권(覇權)의 족쇄에서 하루빨리 독립해야 한다’는 말이 강 장관의 입 안을 맴돌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 세계 자금 시장에 통합된 오늘날 ‘통화 독립국가’를 선포할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외국과 외화 거래가 거의 중단된 북한이라면 모르지만.

    그처럼 막강한 제조업을 가진 독일도 수차례 외환파동 끝에 마르크를 포기, 유로라는 통화 창설에 참가했다. 혼자 버티기 힘들어 다른 나라와 어깨동무한 셈이다.

    영국도 한때 투기꾼들의 농간에 결사 항전(抗戰)을 결의했었다. 지난 92년 영국의 존 메이저 총리와 노먼 러몬트 재무장관은 파운드화를 지키겠다고 수차례 공언했으나,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자들의 폭격에 견디지 못해 파운드화는 폭락했다. 잉글랜드 은행의 금고는 폐허가 됐고, 그해 가을 정권을 잃고 말았다.

    반복되는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환율에 관해서는 거짓말도, 참말도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 최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강 장관은 게다가 투자자들 사이에 기피 인물로 되어 있는 최중경씨를 차관으로 선택했다. 최 차관은 노무현 정권 초기 원화를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워 채권(소위 외평채)을 겁 없이 대량 발행했던 주인공이다.

    그는 “수출 기업을 살리고 경기침체를 막으려고 그랬다”고 하겠지만, 그의 ‘애국적인’ 환율 지키기 전략은 나중에 국민이 수조 원의 세금을 더 내는 것으로 부담이 돌아왔다. 또 무리한 원화 방어가 내수 기업들에게는 더 큰 고통을 강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강 장관이 금융 정책을 책임지는 중앙은행의 역할에 관해 자주 발언하는 것도 20년 전, 30년 전 멸종된 골동품을 복원해내려는 듯하다.

    강 장관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이라는 주장을 기자들에게 여러 차례 설명하며, 한국은행과 그 지도부를 향해 칼날을 세우는 발언을 감추지 않았다. 전투 모드로 해석될 만한 표현도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강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껄끄러운 사이다. 두 사람 모두 실무자 시절부터 중앙은행 독립 문제로 재무부와 한국은행을 대표하는 선봉에서 겨뤄 왔었다.

    강 장관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개인 감정과는 별개로 중앙은행은 정부가 가는 방향에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는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정부가 경기하강을 걱정하면 한은은 금리를 낮춰주고, 수출 중시 정책을 쓰면 환율을 인상해줘야 한다는 식이다. 금리 인하,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간다 해도 정부가 방향을 정하면 따라오라는 발상이다.

    세계 7대 경제 강국으로 가겠다는 정권이 내놓고 중앙은행을 조폐공사 인쇄기나 돌리는 ‘하명 수행기관’으로 삼겠다면 과거 군사정권과 뭐가 다르겠는가. 

    마찰설이 나돌자 두 사람은 7일 공개적으로 만나 ‘한국은행의 자주성을 존중하겠다’며 땜질은 했지만, 선진국의 장관이라면 ‘국내 경기 추세와 국제 경제 흐름을 감안,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는다’는 식으로 세련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뒤로는 비밀리에 만나 개인 감정을 버리고 대응 전략을 오순도순 협의하는 지혜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