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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 들어 국정운영 방향을 좌측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안상수 대표가 '개혁적 중도보수'란 슬로건을 내걸더니 뜬금없이 당 최고위원이 정부와 논의도 없이 '감세 철회' 주장을 해 혼선을 일으켰다. 이 문제로 당 지도부조차 우왕좌왕 하고 있는 상황.
'감세'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경제기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철회하겠다는 것은 곧 '경제성장'을 외치며 정권을 탈환한 이명박 정부의 그간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야당에겐 좋은 공격 소재를 제공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제동을 걸어 '감세 철회' 주장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려는 분위기지만 여진은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보수진영으로 부터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의심받는 시발점이 될 수 있고, 자칫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 마저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집권 후반기 들어 이명박 정부가 보이는 스탠스 역시 이런 의심을 받을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부쩍 '나눔'과 '기부'등을 강조하고 있고, '친서민 중도실용'이란 국정운영 기조는 여전히 중심에 있다. '중도실용' 노선을 두고는 현 정부의 손사래에도 보수진영의 반감이 여전하다.
여기에 '공정한 사회'란 아젠다가 덧붙었고, 이 대통령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주문은 취지와 달리 '대기업의 희생'으로 기울고 있는 모양새다. '감세 철회'논란은 이를 부채질 한 셈이다. 이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을 때 마다 강조하는 '공정한 사회'의 경우 기득권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일부 와전되기도 했다.
현장 방문을 즐기는 이 대통령의 잦은 재래시장 방문과 이때 마다 쏟아내는 각종 정책 및 그의 발언들은 국정운영의 좌표가 보수 진영의 시각에선 '중도실용' 보다는 좌클릭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
집권 후반기 접어들며 여권 전체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정가에선 '차기 총선'과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감세 철회'를 주장한 정두언 최고위원이 내세운 명분은 "다음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야당의 주요 공격 포인트는 '부자 정권 종식'이 될 수밖에 없다. 2013년부터 적용되는 소득.법인세의 최고 세율 인하 때문에 굳이 '부자 감세'라는 오해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간층을 확보하기 위해 중도우파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감세 철회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란 게 정 최고위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의 좌클릭' 지적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가 좌클릭 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잘랐다. "'나눔'이나 '기부'는 원래 보수 진영의 용어고, 현 정부의 경제 정책도 좌로 치우쳤다고 할 수 없다"며 "좌클릭 했다고 하려면 증세와 (정치 세력간) 연대를 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게 이 관계자의 반박이다.
이 관계자는 '성장' 중심의 경제를 외치다 집권 뒤 성장 보다 분배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는 일부 보수 진영의 지적에 대해서도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 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개조하고 있는 상황이고 우리도 이 흐름에 맞춰가고 있는 것"이라며 "선거 공약을 당선 뒤 지킨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신의 임기 동안 1971년 대선 첫 도전 때부터 일관되게 유지한 '대중(大衆)경제론'의 한 페이지도 실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여기에 "집권 초반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현 정부가 계획했던 국정방향이 크게 어그러진 것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현 여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더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부터 '탈이념'을 외쳤고, 최근 여당이 발표한 정체성의 좌표가 이를 더 촉발시키고 있어 청와대의 고민도 더 커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