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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브랜드가 언제 매물로 나오겠느냐. 경기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1등은 안 망한다. 한번 해보자"
5개월 전 박현주 미래에셋회장과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번 해보자"며 던진 승부수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디다스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을 제치고, 한국기업이 글로벌 골프브랜드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를 보유한 어큐시네트를 인수한 것이다.
22일 인수작업을 주도한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유정헌 사모펀드(PEF) 대표는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관심이 많을지 몰랐다. 인수 작업보다 쏟아지는 관심에 응대하는 게 더 어렵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휠라코리아 박종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회사로도, 국가로도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인수작업 과정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박현주 회장은 오는 24일께 윤윤수 회장을 만나 자축할 예정이다.
타이틀리스트가 매물로 나온 것은 올해 1월. 어큐시네트 등 비상장 3개 회사를 보유한 포춘브랜즈는 2년 전부터 행동주의 투자자가 어큐시네트 지분 10.2%를 보유하고서 주주가치 증대를 요구하자, 그때 어큐시네트 매각 계획을 세웠다.
골프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세계 최대 골프공 브랜드 타이틀리스트가 매물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화제였다. 곧이어 캘러웨이, 아디다스, 나이키 등 글로벌 골프용품 업체에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까지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당시 유정현 대표도 "타이틀리스트는 그냥 1등 브랜드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60%에 이르고 2등이 9%인 어마어마한 브랜드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이번 인수의 밀알이 됐다.
우리라고 1등 브랜드를 사지 못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판단한 유 대표가 박현주 회장에게 인수의 필요성을 보고하자 박 회장은 "글로벌 1등 브랜드는 매물로 나오지 않는다. 경기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1등은 안 망한다"며 바로 추진하라는 결정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수 작업에 1월 말 휠라코리아가 합류하면서 인수전이 본격화됐다.
휠라코리아가 인수전에 선뜻 나선 데는 유 대표와 쌓은 신뢰가 크게 작용했다. 유 대표는 2007년 이탈리아 휠라 본사를 인수할 때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과 한번 호흡을 맞췄다. 그 인연으로 4년 동안 휠라코리아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글로벌 전략을 잘 알고 있었다.
윤 회장은 평소 호감을 가졌던 유 대표한테서 인수 협력 제의를 받고 선뜻 동의했다.
이미 삼성증권에서 인수 의향을 물었지만, 막대한 자금 부담을 질 수 없어 실행하지 못했던 터였다. 자금 조달 계획을 들고온 미래에셋PEF와는 해볼만하다고 판단한데다 유 대표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래에셋PEF와 휠라코리아는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을 공동자문사로 구성해 다른 글로벌기업, 사모펀드와의 치열한 경쟁 입찰에 들어가면서 인수전이 본격 시작됐다.
3월 말 미래에셋PEF는 산업은행, 휠라코리아와 함께 4박5일 일정으로 미국 현지 실사에 나섰다.
포천브랜즈는 "도대체 너희가 뭔데 우리를 인수하겠다는 거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유 대표가 미래에셋이 핵심 후원자를 하는 프로골퍼 신지애 선수의 대형사진을 꺼내 보여주고, 윤윤수 회장이 휠라USA를 단기간에 턴어라운드한 전력을 설명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덕분에 아디다스, 미국 PEF 등과 3파전을 벌이는 양상으로 경쟁구도를 좁힐 수 있었다.
최대 승부수는 포천브랜드의 가격 인상 압박에 대한 정면대응이었다. 인수 결정 일주일 전쯤 미래에셋PEF와 휠라코리아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더는 밀릴 수 없다"는 배수진을 쳤고, 결국 그 전략이 주효했다.
가격 인상 불가 통보를 하면서 한때 인수 전망에 먹구름이 끼었지만, 오히려 포천브랜즈가 조급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지난 20일 미래에셋PEF와 휠라코리아가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었다. 인수액은 약 12억달러로, 경영권 프리미엄은 약 4% 수준이다.
어큐시네트는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풋조이 골프화, 스카티 카메론 퍼터, 보키 웻지 등을 보유한 글로벌 1위 골프용품회사로, 연매출이 약 13억달러에 달한다.
미래에셋PEF와 휠라코리아는 주주간의 구두 합의를 했다.
`회사의 경영은 이사회를 통해서 한다. 아큐시네트 인수를 위한 홀딩컴퍼니(Holding Company) 이사회 구성은 미래에셋과 휠라가 5대 5로 한다. 이사회에서 CEO는 휠라코리아가, CFO는 미래에셋PEF가 정한다'는 내용이다.
유 대표는 "어큐시네트 경영의 모든 것은 이사회에서 한다. 이사회의 결정을 행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을 휠라가 정하고, 경영에서 재무 부분은 미래에셋PEF가 맡는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PEF는 아큐시네트 인수를 위한 홀딩컴퍼니의 전화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우선주를 인수하게 된다.
유 대표는 "홀딩컴퍼니가 돈을 벌면 배당을 할 텐데, 배당을 미래에셋에 먼저 받을 수 있게 휠라코리아가 양보했다. BW나 CB로 인수한 것은 우리 투자자 가운데 연기금 등이 포함됐는데 보통주보다 채권 이자 등 안전한 면이 있어 그렇게 했다"고 전했다.
아큐시네트 인수를 위한 홀딩컴퍼니는 이르면 3년, 늦어도 5년 안에 국내와 홍콩 증시에 상장할 예정이다.
유 대표는 "IPO 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신주매출 없이 투자자 구주매출만으로 IPO를 하면 차익실현, 휠라코리아의 아큐시네트 인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IPO는 한국이나 홍콩이 대상이다. 두 곳 중 한 곳이 될 수도, 동시에 이뤄질 수도 있다. 중국시장 사업에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곳에서 IPO를 할 예정이다.
박종안 휠라코리아 CFO는 양측간 풋백옵션이 있다는 소문과 관련해 "그것은 말도 안 된다. 5년 후 상장이 안됐을 때 미래에셋PEF가 전환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서 매각을 결정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해명했다.
유 대표는 "글로벌 1등 브랜드를 한국이 인수한 의미 있는 일이다. 현지로 가서 실사하고, 인수 후 경영계획을 세우려면 앞으로 두달간 더 바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