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업계 "K9 결함 감사 과정에서 비위 밝혀졌을 것""'업의 본질' 훼손하는 중대 잘못 있었던 게 분명"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하게 질책하고, 원인을 제공한 삼성테크윈의 오창석 사장이 즉각 사표를 내면서 이 회사의 '부정'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오 사장이 최고경영자(CEO)로서 관리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이지 개인 비리와 연관된 것은 아니며 방산업체인 삼성테크윈이 군에 납품하는 'K9 자주포'의 결함과도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에서는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8일 방산업계와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을 격노하게 한 삼성테크윈 임직원들의 부정이 적발된 것은 연평도 등에 배치된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K9 자주포와 어떻게든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많다.

    방위사업청이 K9 자주포를 조사해 동력 계통 부품의 결함을 밝혀냈고, 이에 따라 삼성 미래전략실 감사팀이 삼성테크윈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들어가 일부 임직원의 비위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K9 자주포가 사고를 내거나 작동이 안 돼 부속품에 하자가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며 "부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정사례가 불거진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실제 방위사업청이 지난 2월 국방위원회 송영선 의원에게 제출한 업무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8월31일 경기 파주시 국도변에서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K9 자주포의 조향장치가 반대로 작동하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방위사업청은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K9 자주포 엔진의 힘을 바퀴에 전달하는 `커플링'이라는 이음매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밝혀내고 이를 전부 교체하는 한편 전국 26개 부대에 배치된 K9 자주포 부품의 결함 여부를 일제 점검했다.

    아울러 작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따른 최초 대응 사격 때 해병대 연평부대에 배치된 K9 자주포 6문 중 절반인 3문만 작동했다.

    합참은 당시 2문은 북한의 포 사격에 따른 충격으로 전자회로장애를 일으켰으며 1문은 앞선 사격훈련 때 발생한 불발탄이 끼어 사격에 가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이 잇따르자 삼성 미래전략실 감사팀이 2월부터 120명의 사상 최대 인력을 동원해 삼성테크윈의 부품 조달 및 납품 등의 업무를 낱낱이 파헤쳤고, 이 과정에서 일부 임직원의 비리가 밝혀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삼성은 그러나 이번 감사와 그 결과는 K9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K9 납품 등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과 관련 없다"면서 "부정의 내용 등을 일일이 말하기는 어려우며 그냥 짐작하면 된다. 사회 통념상으로 (부정의 정도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해도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고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임직원 한 명이 비위를 저질렀으면 CEO가 그만두겠느냐"고 말했다.

    따라서 감사팀이 K9 문제를 계기로 감사에 착수해 복수의 회사 임직원의 이런저런 부정 사실을 들춰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의 과거 인사에서 오 사장 퇴임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삼성은 사장단 인사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하는 일부 재벌과는 달리 CEO의 진퇴 결정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웬만한 잘못이나 실적 부진은 즉각 조치하기보다는 정기 인사 때까지 기다렸다 '모양새 있게' 내보내는 것이 삼성의 스타일이다. 열심히 일하려다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격려해야 한다고 이 회장 스스로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업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중대한 잘못이나 윤리관 자체를 의심케 하는 부도덕한 행위에는 가차없는 잣대를 들이댄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에스원 사장의 임기 전 퇴진을 들 수 있다. 지난 2007년 보안업체인 에스원 직원이 주택에 침입해 강도짓을 벌였고 회사측은 그가 현직 직원이 아니라고 거짓말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자 당시 CEO는 즉각 사표를 내 수리됐다.

    삼성의 인사 스타일을 잘 아는 이들은 이런 과거 사례를 감안할 때 삼성테크윈의 경우도 '납득가능한' 잘못이 아니라 '업의 본질'을 훼손하는 중대 비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