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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올해로 다섯 돌을 맞는 그레이 뮤직 레전드 세미나에 등장한 뮤지션은 '펑크음악의 대모'인 페티 스미스(Patti Smith)입니다.
지금까지 칸 라이언즈 무대에 선 뮤지션은 존 레전드, 도노반, 스티브 반 잔트, 토니 베네트, 오노 요코였습니다.
패티는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아방가르드 록뮤지션이며, 세계평화와 고용촉진 운동을 하는 시민운동가입니다.
시인 활동을 하다 75년 자신의 문학세계를 록에 접목한 'Horses'로 데뷔해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팔레 데 페스티발의 드뷔시 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레이의 글로벌 CD 팀 멜로스(Tim Mellors)는 패티에게 강력한 아이콘 이미지를 어떻게 형성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에 온 모든 마케티어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입니다.
패티의 앨범 커버는 발매될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팬들과 평론가들은 그녀의 음악이 열정과 정직함,그리고 날카로움을 잃은 적이 없다고 평가합니다.
"나는 일부러 이미지를 키우려하지 않습니다. 제 책과 음악에 모든 열정을 퍼부을 뿐입니다.
앨범이나 책을 발매할 땐 제가 했던 모든 일들을 디자이너와 상의하며 작업합니다.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미학적인 것과 커뮤니케이션에 늘 신경을 씁니다.사람들은 내가 무엇인가가 되어주기를 원하지만 나는 한번도 무엇이 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펑크로커가 되려고 애썼다고요? 나는 록스타처럼 행동해야 하는 장소에는 가지 않습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늘 주장해왔듯이 나는 성(Gender)을 넘어섰고 라벨을 넘어섰으며 독립적입니다.
나는 한번도 편안한 지대에 머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안전지대를 벗어나길 주저하지 마십시오! "전세계에서 온 광고인들앞에서 패티는 광고에 대해서도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드러냈다.
"나는 광고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기에 좋아합니다. 특히 미학적인 광고, 나이키 광고 같은 것 말이죠.
광고가 강력하고 실용적이면 사람들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욬
그렇다고 어디가나 광고판에 시달리기는 싫습니다. 광고하는 줄 모르게 알리는 게 좋습니다.지난해 이 세미나의 연사였던 오노 요코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존 레논과 함게 오노 요코는 '원하면 전쟁은 끝난다(War is over, if you want it)'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했습니다. 요코가 흰 플래카드에 검은 글씨로 적어넣은 이 슬로건은 정치적 행동과 광고가 결합한 아주 훌륭한 예입니다."그레이 그룹의 제임스 히킨(James Heekin) 회장은 패티를 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에 초대한 이유로 단지 그녀의 음악때문만이 아니라 펑크 아이콘으로서 페르소나(Persona)를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확실히 패티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록스타가 아닙니다.
그녀는 록가수로 유명해지기 전에 시인이었습니다.
비트시인들과 뉴욕에서 어울리며 아르튀르 랭보에 매료된 젊은 시인이 록큰롤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록그룹 도어스(Doors)의 레이 만자렉(키보드 주자)의 솔로 앨범에 참여한게 계기가 됐습니다.
패티는 시인으로서 짐 모리슨의 시를 녹음하는 작업을 맡았답니다.
도어스는 그녀의 영웅이었습니다. 도어스의 리드싱어 짐 모리슨은 68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마약중독으로 사망합니다.
많은 록스타들이 마약과 알콜에 빠져 스러져갔지만, 패티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정신세계를 발전시켜 전세계 팬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1978년 브루스 스프링스턴과 듀엣으로 발표한 싱글곡 'Because The Night'가 메가히트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하던 그녀는 이듬해 돌연 기타리스트 프레드 소닉 스미스와 결혼해 10년간 록활동을 접고 아내와 두 아이의 엄마 역할에 충실합니다.
히피문화와 초현실적인 예술행위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록스타가, 그것도 펑크의 아이콘 패티 스미스가 주부가 됐다고요?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그녀는 10년간 두문불출 했습니다.
대중들이 그녀를 잊어갈 무렵 'Dream of Life'(88년)로 패티는 다시 예술의 세계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랑받길 원했고 사람들과 일하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컴백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정신세계와 종교(여호와의 증인)에도 심취한 패티는 94년 남편이 사망하면서 "좀 더 성숙해지고 사람들의 존재를 고맙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최대의 역작으로 꼽히는 'Peace and Noise'는 남편의 죽음을 기리는 작품입니다.
칸 무대에 선 패티는 소통과 희망의 전도였습니다.
" 몇일전 바르셀로나에서 고용을 촉구하는 대정부 시위에 참여하고 오는 길입니다.
음악은 나라마다 다른 문화를 표현하게 하고 서로 소통하게 하며 화합하게 합니다.
나는 마약과 알콜이 아니라 커피와 책, 그리고 일을 사랑합니다. 나의 책은 내게 말합니다. 더 젊어지고 더 희망을 가지라고"
그녀는 46년생, 올해로 65세입니다.
2007년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지난해엔 폴라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랑스 칸=이성복 영화평론가·칸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한국사무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