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불확실성 때문에 자금 조달 부담"불투명한 반도체 경기 전망도 한몫
  • STX가 19일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를 돌연 중단키로 했다.

    STX그룹은 그동안 인수 경쟁업체인 SK텔레콤에 비해 자금력에서 다소 열세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동 국부펀드와의 컨소시엄 구성 계획을 밝히는 등 인수 자금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STX는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를 위한 재무적 투자자로 UAE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국영투자회사인 아바르(AABAR)를 선택, 자사가 인수 금액의 51%를 부담해 경영권을 보유하고 아바르는 나머지 49%를 맡는 식으로 양사간 인수자금 조달 계획을 최종 조율해왔다.

    강덕수 회장도 추석 연휴 전에 아부다비로 직접 출장을 다녀와서 컨소시엄 구성이 사실상 마무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특히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해외계열사인 STX유럽(구 아커야즈)이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자회사인 STX OSV 보유 지분 18.27%를 매각함으로써 약 2천5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하이닉스 인수에 대한 의지와 자금 확보 능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전의 관건인 자금확보는 그간 STX의 공언과는 달리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STX는 '인수 중단'을 공식화한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중동 국부펀드와 컨소시엄 합의를 이뤄내 투자를 추진했으나 투자유치 조건에 대한 최종 합의가 지연되고 있는 점도 인수 추진 중단의 배경"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STX가 공식적으로 밝힌 인수 추진 중단 배경은 세계경제 불확실성과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부담이다.

    최근 유럽발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지자 '공룡 매물'인 하이닉스 인수 자금 조달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말 대우조선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던 한화그룹의 경우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결국 자금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결국 중도 하차해 계약 이행보증금 지급 문제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STX도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설이 확산되자 한화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하면서 하이닉스 인수전에서 발을 뺀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산 16조원, 연 매출 12조원에 이르는 '공룡 매물' 하이닉스의 인수 및 초기 투자비용으로 3조-4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또 하이닉스의 낸드 및 비메모리 등 반도체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도 인수 추진 중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STX 내부에서는 자금 조달 및 향후 반도체 사업의 불확실성 외에 다른 측면에서 역량 부족 및 비우호적인 상황 때문에 인수 추진을 중단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STX의 한 관계자는 "자금 조달 부담 및 반도체 경기의 불투명한 전망 뿐 아니라 일부 언론사들의 근거 없는 인수 철회 및 채권단과의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로 인해 힘이 빠진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올해들어 급전직하를 거듭한 반도체 시황 악화와 향후 지속될 천문학적인 투자 부담으로 STX는 당초의 인수의지가 약화된 상황에서 기대를 걸었던 UAE 자금의 유치가 교착국면에 빠지고 안팎의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아 결국 '백기'를 들고 만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양자대결'로 진행돼온 하이닉스의 인수전은 STX의 전격적인 인수 추진 중단으로 일단 SK텔레콤의 단독응찰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채권단이 이에 관한 입장을 정리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