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 대형마트, TV홈쇼핑의 판매수수료를 낮추기 위해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 지 근 1년. 지난해 9월 롯데, 신세계·이마트, 현대 등 11개 대형유통업체들이 김동수 공정위원장과 간담회에서 동반성장을 약속했다. 중소납품업체에게 받던 판매수수료를 3~7%를 낮추기로 했다.

    김 위원장 앞에서 업체 간부들은 인하 수수료율을 언급하지 않았다. 인하율이 낮으면 정부의 눈치가 보이고 높으면 영업이익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간담회 당시 업체 측은 따로 논의할 시간을 달라고 한 후 뒤에서 적당한 인하율을 논의해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동반성장을 위한 인하’가 아닌 ‘정부 눈치보기’로 억지 인하를 하게 된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공정위도 ‘무늬만 인하’라고 인정했다. 공정위는 당초 대형유통업체에 중소기업 업체들의 수 4,726개사 중 50%는 수수료가 줄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숫자 맞추기’를 해왔다. 우선 인하업체수를 2,272개로 선정해 정부가 제시한 2,369개를 대략 맞췄다. 한번 거래하고 끝나는 업체, 단품을 납품하는 업체, 매출이 적은 업체, 계약기간이 짧은 업체를 중심으로 업체수를 채웠다.

    숫자 맞추기에만 신경 쓰다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수수료를 낮춰줬던 납품업체와 재계약할 때 수수료를 다시 올려놓고 인하업체에 포함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다른 납품업체들 입장에서는 재계약 때 다시 수수료율이 오를 것이란 불안감까지 가지게 됐다. 1년 동안 정부에서 공들여 온 정책이 납품업체의 계약 기간에 따라 3개월, 6개월, 길어봤자 1년짜리 전시성 눈가림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매년 판매수수료가 인상돼 왔는데, 이번엔 인하됐다는데 의미가 있다. 재계약하면서 다시 인상하는 일이 없도록 꾸준히 지켜보고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체질개선, 구조적 개선 등 지속가능한 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수수료 인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부분은 높이 살만 하다. 의지를 지닌 담당자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 공정위 위원장이 바뀌면? MB정부가 끝나면?

    올해 말 대선이 끝나고 공정위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하며 납품업체들은 여전히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