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던
    김영삼 정부가 일본에 당한 교훈을 잊지 않아야


    강경식(姜慶植) 당시 부총리가 털어놓은, IMF 사태 직전 日에 손을 내 밀었다가 거절당한 사연.

    趙甲濟    
     
    외환위기 때 경제부총리를 지낸 강경식(姜慶植) 씨는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김영사)이라는 회고록에서 일본의 도움을 받으려다가 거절당한 과정을 소개하였다. 

  • ▲ 큰소리 치다 일에 개망신 당한 김영삼 전 대통령.ⓒ
    ▲ 큰소리 치다 일에 개망신 당한 김영삼 전 대통령.ⓒ

    <상환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평소에 90% 이상이던 단기외채의 만기(滿期)갱신 비율(Roll Over Rate)이 6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엄낙용 차관보(후에 한국산업은행 총재 역임)가 외환시장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하면서 긴급자금지원 요청을 위해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본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것과 관련해 예상되는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미국과 IMF가, 일본과 직접 해결하는 쌍방방식을 별로 환영할 것 같지 않다는 것(AMF 구상의 좌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 성사(成事)될 가능성도 의문시된다는 것(11월 초의 외신에 클린턴 대통령이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에게 앞으로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생기더라도 양국 간 해결 방식을 취하지 말아달라는 공한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등의 우려를 말했다. 또 우리 국민들이 일본의 도움을 받을 경우 자존심 손상도 있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일본 정부에 지원 요청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IMF에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 정도(正道)라는 나의 생각을 말했다.
     
    따라서 일본에 갈 경우 정부 대(對) 정부의 지원이 아닌, 일본 금융기관들이 만기(滿期)연장 등에 특별 배려를 해주도록 ‘행정 지도’를 당부하는 쪽으로 교섭하도록 지시했다. 만기연장만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비공식적 영향력 행사는 8월 말 미쓰츠카 대장상이 방한(訪韓)했을 때의 예를 보더라도 기꺼이 협조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 차관보는 1997년 11월10일 방일(訪日)해서 미스터 옌(Mr. Yen)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대장성 사카키바라 차관보를 만난 후 11일 귀국했다. 방일(訪日)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양국 간 협력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일본은행이 한국은행에 대한 SWAP(注: 통화스와프)등 지원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고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그것도 마찬가지로 안 된다고 했다는 보고였다. 즉 자금난 해소를 위한 지원은 IMF를 통해서만 하도록 이미 미국과 일본이 합의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시중은행에 대해 만기연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협조 요청에 대해서는, 당시 일본의 경제 사정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일본 검찰이 금융기관과 대장성의 유착관계를 수사 중이어서 대장성의 위상(位相)이 약화된 터라 실현되기 어렵다는 대답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설사 당시 일본 정부가 나서서 만기연장 협조를 요청했더라도 일본 금융업계는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사정에 있었다. 1997년 11월에는 일본도 금융위기에 몰려 엄청난 홍역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은행들이 BIS 기준을 맞추기 위해 무자비한 자금회수에 나섰고 그 결과 수많은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흑자도산에 몰리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배려를 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일본은 외환 사정이 좋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우리나라와 같은 외환위기로 발전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김영삼 정부는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아 그 일본에 지원을 부탁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일(韓日)관계가 좋았더라면, 한미(韓美)관계가 원만하였더라면 일본과 미국은 수백억 달러의 지불 보증으로 한국이 IMF로 가지 않도록 도왔을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실인심(失人心) 상태였다.

    외교의 가장 큰 실수는 고립인데, 김영삼 정부는 동맹국 사이에서 고립되었던 것이다.
     
    이(李) 대통령의 대일(對日) 강경책 이후 일본은행과 한국은행 사이에 맺은 700억 달러 한도의 통화 스와프 협정에 대하여 일본이 오는 10월의 만기일에 연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李) 대통령은 일본에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점검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김영삼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