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엔진의 풍부한 토크, 독립식 서스펜션으로 주행 스트레스 없어도심 12.6km/l, 고속도로 17.9km/l의 고연비…게다가 경제적인 디젤
  • “그랜져HG, 이제 큰일났다! 이제 누가 그랜져 사려고 하겠냐?!”

    폭스바겐의 ‘스테디셀러’ 파사트 2.0 TDI 7세대 모델을 처음 본 기자들이 던진 말이다.

  • ▲ 모습을 드러낸 폭스바겐 7세대 파사트 2.0 TDI.
    ▲ 모습을 드러낸 폭스바겐 7세대 파사트 2.0 TDI.

    벤츠, BMW의 고가전략으로 “독일차는 비싸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이를 왕창 깬 게 ‘국민차’ 폭스바겐이었다. 그런 폭스바겐이 이번에 파사트를 시작으로 “독일차는 국산차 값이다”라는 공식을 만들려는 듯 했다. ‘풀옵션’ 가격이 4,050만 원이란다. 그랜져 HG 330모델(4,348만 원)보다는 싸고 K7보다는 비싸다.

    혹시 가격만 싼 건 아닐까. 마침 신형 파사트 2.0TDI를 타 볼 기회가 생겨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시승에 앞서 곰곰히 생각했다. 운전할 때 토크 계산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이번 시승에서는 엔진 마력이나 토크 등 제원 상의 수치는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했다(제원은 네이버에서 찾으면 다 나온다).


    8월 13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광진구 쉐라톤 워커힐 호텔

    8월 13일 오후 쉐라톤 워커힐 호텔 그랜드볼룸 앞으로 7세대 파사트 10여 대가 늘어섰다. 6세대에 비해 조금 더 ‘각’이 들어간 외형은 '허세'를 중시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잘 먹힐 것 같았다.

    파사트는 골프, 비틀과 함께 폭스바겐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1973년 7월 처음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6번의 ‘페이스 리프트’를 거치며 1,500만 대나 팔았다. 인기의 비결은 ‘페밀리 세단’이었다.

    독일의 첫 국민차는 나치 정권 시절 폭스바겐(Volkswagen. 국민차)이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만들었던 ‘비틀(Beetle)’이었다. 독일이 패전 후 다시 재기할 때 폭스바겐도 함께 성장했다. 1973년은 독일이 전쟁의 아픔을 상당 부분 복구한 뒤였다. 이때부터 차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파사트는 폭스바겐이 만든 ‘패밀리카’였다.

    파사트는 검소한 독일 사람들을 많이 닮았다. 이는 차의 크기에서도 나타난다다. 처음 나올 때 파사트의 크기는 준중형급으로 그리 크지 않았다. 커졌다던 6세대 파사트도 길이가 4,765mm로 우리나라 준중형 세단 정도였다.

    이번에 새로 나온 7세대는 4,870mm로 ‘그랜져’급이 됐다. 휠베이스(축거)는 2,803mm나 된다. 덕분에 뒷좌석의 다리 놓는 곳 등 실내공간이 크게 넓어졌다.

    호텔에 도착해 스마트키를 받고 시동을 켰다. 이전 일정 때문에 허둥지둥 달려와 키를 받아들고 시동을 건 직후까지는 이 차가 가솔린 엔진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밟아보니 ‘이런!’ 디젤차였다. 디젤엔진 특유의 저회전 영역부터 나타나는 풍부한 토크 때문인지 'Made in USA'라 그런 건지 ‘미니 머슬카’를 탄 기분이었다.


    잘 만든 미국차 같은 독일차 파사트?!

  • ▲ 모습을 드러낸 폭스바겐 7세대 파사트 2.0 TDI의 실내 모습. 앉을 때 지저분해질까봐 조심해야 했다.
    ▲ 모습을 드러낸 폭스바겐 7세대 파사트 2.0 TDI의 실내 모습. 앉을 때 지저분해질까봐 조심해야 했다.

    동승한 사진기자는 “폭스바겐은 좌석을 높게 올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시야 확보에 유리하고 개방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행과 함께 목적지인 남한강변에 있는 한 갤러리를 향했다. 그 곳을 거쳐 다시 워커힐 호텔까지 돌아오는 시승구간은 약 100km. 중간에 잠깐 고속도로를 거칠 뿐 대부분은 국도나 시내도로였다.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 올림픽대로에 들어선 뒤 평상 시처럼 자유롭게 운전했다. 시내에서야 속도를 낼 일이 없었다. 일상운전영역인 60~110km/h 사이에서는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 대로 움직여줬다. 페달과 엔진의 반응 사이에 지연시간은 없었다.

    서울을 벗어난 뒤 국도로 들어서자 곡선 주행도로가 나타났다. 하체는 ‘독일차 답게’ 탄탄했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고 ‘약간’ 힘을 줬다. 80~90도 커브의 곡선주행에서 끼이익 타이어 소리가 났지만 파사트는 자기가 낸 소리가 아닌 ‘척’ 조용하고 단단히 움직였다.

    차가 없는 곳에서 잠깐 속도를 낼 때는 ‘풍부한 토크’를 느낄 수 있었다. 스포츠카처럼 잽싸게 튀어나가지는 않았지만 일반 운전자들에게는 스트레스 없는 운전을 선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목적지를 약 20여 km 남겨두고 국도로 들어섰다.

  • ▲ 50여 km를 달려가 도착한 남한강변의 한 갤러리. 경치는 끝내줬다.
    ▲ 50여 km를 달려가 도착한 남한강변의 한 갤러리. 경치는 끝내줬다.

    국도 노면은 상태가 나빴다. 군데군데 길이 패인 데다 전날 내린 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수백 미터마다 ‘법규’를 어긴 과속방지턱이 ‘전차 장애물’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생길 수 있는 ‘노면 스트레스’는 모두 파사트가 해소해 줬다. 독립식 서스펜션을 채택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편안한 주행을 선사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과속방지턱과 곡선주행구간, 주행 중 만난 ‘저속 운전자’들에도 불구하고 파사트를 운전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브레이크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점이었다. 


    커진 파사트, ‘전략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정신을 차리고 차를 살폈다. 첫 인상은 ‘크다’는 것. 길이 4,870mm, 폭 1,835mm, 높이 1,485mm는 예전의 파사트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실내는 4인 가족이 함께 타기에는 딱 좋은, 넉넉한 수준이었다. 성인 5명이 타도 비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폭스바겐 측은 7세대 신형 파사트가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밝혔다.

  • ▲ 목적지에서 본 7세대 파사트. 파사트는 지금 미국 공장에서 만든다.
    ▲ 목적지에서 본 7세대 파사트. 파사트는 지금 미국 공장에서 만든다.

    “2007년부터 폭스바겐의 매출 중 글로벌 시장 비중이 더욱 높아지면서 새로운 전략을 개발했다. 새 전략에 맞춰 각 시장의 특색에 맞는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폭스바겐 개발 담당 총괄 책임자 울리히 하켄베르그 박사, 폭스바겐 수석 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 폭스바겐 브랜드 디자인 총 책임자 클라우드 비숍 등 그룹 내 최고위 임원들이 모두 참여했다. 그 결과물이 신형 파사트다.”

    '유럽 최대 브랜드' 폭스바겐은 역시 만만치 않은 회사였다. 7세대 파사트는 한국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거의 다 갖췄다.

    한국차의 특징은 ‘보기에는 크지만 내실은 빈약한 차’로 압축할 수 있다. 각 브랜드마다 내장되는 안전 바(Bar), 강판재질, 에어백 등으로 곤란을 겪은 바 있다. 폭스바겐은 보기에 크고 안전은 일반적인 독일차 수준에 맞추면서 가격은 저렴하게 만든 신형 파사트를 선보였다.

    신형 파사트에는 6개의 에어백, ESC, 언덕밀림방지장치, 플랫타이어 경고시스템 외에도 추돌사고에서 일어날 수 있는 후속 충돌을 방지해주는 ICRS(지능형 충돌 반응 시스템. Intelligence Crash Response System)까지 탑재했다.

  • ▲ 운전석에 앉아 본 계기판. 시인성? 울그락불그락하는 계기판보다 차라리 이런 모양이 더 나아 보인다.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르다.
    ▲ 운전석에 앉아 본 계기판. 시인성? 울그락불그락하는 계기판보다 차라리 이런 모양이 더 나아 보인다.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르다.

     

    '타성'에 젖은 자동차 업체들, 이제 모두 긴장해야

    7세대 파사트에 최근 수입차들이 채용하는 편의장치 중 몇몇은 빠졌지만 없다고 불편한 장치는 아니다. 불만도 별로 없다. ‘국산 대형세단’보다 싸지 않는가?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잘 나가는’ 자동차 브랜드들의 행태는 소비자들을 많이 실망시켰다. 별 다른 변화도 없이 매년 ‘신형’이라고 내놓으며 7~9%의 가격 올리기, 모델마다 상이한 옵션 선택 제한, 보증기간이 끝나는 3년 또는 5년 뒤부터 급증하는 온갖 고장 등에 대해 소비자들이 수많은 항의를 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수천만 원짜리 차를 그냥 '파는 대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수입차 브랜드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10년 넘게 수입차와 국산차 업체들은 서로의 ‘텃밭’은 건들지 않다시피 했다. 수입차들은 5~13배에 달하는 부품값과 비싼 공임을 받으며 자신들만의 ‘영토’를 만들고 있었다.

  • ▲ 늦더위가 지난 뒤 가족과 함께 남한강으로 놀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럴 때 파사트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 늦더위가 지난 뒤 가족과 함께 남한강으로 놀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럴 때 파사트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럴 때 ‘정직한 수입차’와 하위 국산차 브랜드들이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와 시장에 ‘긴장감’을 불러 넣어야 한다. 각 업체의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최근 BMW의 3시리즈와 벤츠의 C클래스가 가격인하로 국산차 시장을 건들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폭스바겐의 7세대 파사트는 자동차 시장 전체를 겨냥한 첫 번째 ‘돌직구’로 봐야 하지 않을까.

    폭스바겐이 이 ‘돌직구’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