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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화 장편소설 '레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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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잇따른 죽음
“유진아, 소식 들었니?”
“빅뉴스인가요?”
“빅뉴스라고 하기엔 다소……. 그래도 대어는 틀림없어.”
“대어요?”
“벤처기업을 설립해 수익금으로 제2전선의 간첩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한 업체대표가 마침내 검거됐어.”
“전 또, 오늘 새벽 변사체로 발견된 문 기자의 추가 물증이라도 발견된 줄 알았네요.”
“아니, 뭐라고? 개코 문 기자가 피살됐어?”
“문 기자가 새벽에 피살됐다는 게 아니라 오늘 새벽 환경미화원이 문 기자의 사체를 발견했다고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뭐.”
“재국 선배, 문 기자 피살사건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제가 대충 파일로 정리해놓았으니까 이걸 한 번 보세요.”
“이거 김이 확 빠지는군. 넌 또 어떻게 안 거야?”
“저도 우연히 TV를 보다 알게 됐어요. 그래서 출근과 더불어 자료를 정리했고요.”
“그런데 이 파일의 내용이 맞는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니?”
“경찰이 발표한 문 기자의 최근행적 말이군요.”
“응.”
“기자가 무슨 이유로 의정부 지역의 사체업자와 어울렸느냐 그거죠?”
“맞아.”
“하지만 단순 강·절도범이 아닌 건 확실하잖아요. 첫 번째로 현재까지 밝혀진 직접적인 사인이 둔기에 의한 외상이라는 점, 두 번째 지갑을 비롯한 유류품은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점, 마지막 세 번째는 문 기자가 남긴 유서. 거기다 참고인 조사를 받은 동료기자들의 진술까지도 일치해요. 경찰 측에 의하면 고향 인근 바닷가에 지인과 함께 펜션을 짓는 중이었답니다. 그런데 지인이 돌연 잠적하는 바람에 문 기자가 부채를 모두 떠안았고요.”
“그 지인의 신병은 확보됐어?”
“중학교 동창인데 현재 소재가 불명이에요.”
“그럼, 정말 채무상환을 못해 사체업자가 고용한 조폭들이 저지른 살인사건인가?”
“최소한 설득력은 있어요.”
“채무변제를 연체했다고 사람까지 죽이다니.”
“아참! 제가 혹시나 해서 문 기자의 사망추정시간 전후의 통화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 휴대전화의 명의자와 사용자가 달랐습니다. 게다가 개통자는 이미 사망했고요.”
“한마디로 대포폰이군. 그 역시 사체업자와 조폭들의 범행이라는 증거고.”
“맞아요.”
“아무튼 가족사도 그렇고 성장과정도 그렇고 참 박복한 사람 같아.”
“그러게요.”
“박복하긴 뭐가 박복해!”
“앗! 처장님.”
“문 기자의 실체가 뭔 줄 알아? 다른 팀에서 고첩(고정간첩) 혐의로 내사하던 인물이야.”
“아니, 문 기자가 고첩 혐의로 내사를 받던 중이었다고요?”
“그래, 문상원은 제2전선의 총책 남운영과 대학 선후배 사이로 과거 기자생활도 같이했어. 문상원이 최근에는 탈북자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첩보까지 접수됐고. 혹시 이 팀이 보호·관리하는 대상자와 접촉한 사실은 없었어?”
“아직 저희가 보호·관리하는 대상자와의 접촉사실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하긴 물어본 내가 바보지. 아무튼 남 걱정할 시간에 자네들 앞일이나 걱정해.”
“…….”
“왜, 내 말이 틀렸어?”
“아, 아닙니다.”
“그런데 최정원은 또 어디 간 거야?”
“그건 저희들도 잘…….”
“잘한다, 아주 잘해. 팀장이란 놈이 팀원들에게 행선지도 안 남기고 사라지고. 이러니 이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그럼 서유진이 최정원에게 전해.”
“뭘 말입니까?”
“동기까지는 의심하지 않겠지만 불장난을 너무 좋아하지는 말라고. 인상적인 건 한 번으로 충분해. 내가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마 최정원이 더 잘 알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도 명심해. 때로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설픈 행동이 다른 동료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쯔쯔쯔.”
엄 처장은 기분대로 상대를 무차별 공격하는 테러리스트였다. 그리고 쏟아내는 말은 독사처럼 신종독소까지 갖고 있었다. 그 내피독소가 뇌리에 침투하면 가장 먼저 혈액을 응고시켜 혈관을 막았다. 때문에 상대는 심박수와 혈압이 상승하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혈압이 치솟아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독혈청(蛇毒血淸)이 없어 부하 직원들에게는 뱀독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이미 재국과 유진의 감정은 괴사(壞死)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국과 유진은 스스로 괴사조직과 상처부위를 절단했다. 그러자 겨우 고통과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유진 씨, 왜 그래?”
“방금 전 핵전쟁과 지구온난화로 내일 인류가 멸망한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후후후, 처장님이 다녀가신 모양이군.”
“그런데 팀장님, 어디에 계셨어요?”
“확인할 게 좀 있어서.”
“혹시 류가흔과 관련된 소식입니까?”
“응, 오늘 아침 중국중앙방송(CCTV)이 리전트호텔의 여성투숙객 한 명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뉴스를 내보냈어. 중국 공안부도 사인을 심장마비로 발표했고.”
“우~아! 그럼 팀장님의 류가흔 제거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한 거로군요!”
“하지만 아직 좋아하기는 일러. 마에다 유주루가 작전 중이잖아.”
“쩝!”
“그런데 엄 처장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유진 씨의 얼굴이 이렇게 창백해?”
“불장난을 너무 좋아하지는 말라고 하셨어요. 인상적인 건 한 번으로 족하다고.”
“그래! 그렇다면 이미 이 사실을 모두 알고 계셨다는 소리군.”
“에~이 설마요.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벌써 해고 됐겠죠. 안 그러냐?”
“맞아요. 어느 면에서 엄 처장님은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온 메시아로 착각하는 것 같아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오르는 거룩한 희생 말이에요.”
“그리고 자신은 최후의 날 신의 심판대를 차지한 심판관이고 말이야.”
“너희는 회개와 정화로 각자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라. 그래야 심판이 행해지는 마지막 날, 대재난에서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 훗!”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