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로호(KSLV-I), 두번 다시 볼일 없는 '러시아 로켓'

    북한-러시아 ‘미사일 개발협력’ 밀월(蜜月) 관계 해부/
    ICBM 1단 로켓-자체개발로 선회해야


    金泌材   
     
          
  • ▲ 김정일과 푸틴의 밀약을 다룬 <러시아 5만리>
    ▲ 김정일과 푸틴의 밀약을 다룬 <러시아 5만리>
     
    나로호(羅老號) 또는 KSLV-I(Korea Space Launch Vehicle-I)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이다.
    나로호는 당초 2005년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로 개발이 시작됐다.
    그러나 러시아 국회 비준이 지연되면서 2007년과 2008년으로 두 차례 발사가 연기됐고,
    2008년에는 중국의 사천성(四川省) 대지진으로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겨 2009년으로 발사가 연기됐다.

    그러나 2009년 실시된 발사도 순탄치 않았다.
    러시아가 시험항목이 늘어났다며 7월30일로 미룬 데 이어, 최종 연소시험 일정문제로 8월11일로 발사를 연기했다. 이후 데이터 분석 문제로 또 다시 발사가 연기됐다.

    2009년 8월19일 다시금 발사가 시도됐으나 발사 7분56초를 남기고 고압탱크 압력측정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자동으로 발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발사가 또 다시 연기되어 2009년 8월25일 1차 발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당시 발사에서도 페어링 분리 실패로 발사 이륙 9분 뒤 고도 306km에서 과학기술위성 2호와 분리됐어야 했으나 고도 304km 상공에서 분리됐다. 예상 고도보다 36km 더 올라가서 분리된 것이다. 나로호 로켓 발사는 성공적이었으나 과학기술위성 2호 발사는 실패한 것이었다.
     
    2010년 6월9일로 예정됐던 2차 발사에서도 발사를 3시간 앞둔 시점에서 발사대 주변 소방설비에서 소화용액이 흘러나와 발사가 중단됐다. 2차 발사는 다음날인 10일 예정대로 진행됐으나 이륙 후 1단 로켓이 연소되는 구간에서 공중 폭발했다. 2012년 10월26일 3차 발사가 예정되었으나 일부 결함 문제로 11월29일로 발사가 연기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2단 추력방향제어기 점검 과정에서 신호이상이 감지되어 발사가 또 다시 연기됐다.

    韓國, 나로호 1단 로켓 손도 못대


    한국과 러시아 정부는 당초 ‘위성발사체 설계기술협력 등을 위한 우주기술보호협정’(TSA)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러시아는 한국에 ▲액체연료저장을 위한 상세설계 기술 ▲위성 발사체 핵심기술 ▲발사체와 발사대를 연결하는 기술 ▲발사대 운용기술 등을 이전하게 되어 있었다.
    러시아는 그러나 로켓발사와 관련된 기술 이전을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복수의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나로호의 문제점은
    ▲개발이 덜 된 로켓 도입 ▲엔진 연소 시험 생략 ▲공동 개발에 따른 기술 이전 여부 등으로 요약된다.

    1. 러시아가 개발한 나로호 1단 로켓은 동종(同種) 모델로 한 번도 비행 시험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험 비행을 한 셈이다.
    이에 대해 로켓 전문가들은 “로켓 1단을 2억 달러나 주고 사오면서 그 비행시험까지 해주는 셈이다. 국제 우주과학계에선 미스터리 같은 거래”라고 지적해왔다.


    한국은 1단 로켓을 제조할 능력이 없어 2억 달러를 주고 샀다. 한국 땅에서 한국 위성을 처음 쏘아올리는 것일 뿐 러시아의 등에 업혀가는 것이다.

    2. 나로호에 사용되는 액체로켓 엔진은 러시아 로켓엔진 개발회사인 에네르고마쉬사(社)가 제작한 RD-151엔진이다. 이 엔진은 추력 170톤급으로, 140톤 무게의 나로호를 196㎞ 상공까지 쏘아올린다. 이 엔진은 러시아가 개발 중인 차세대 로켓 ‘앙가라’에 장착될 RD-191엔진을 개조한 것이다. RD-191은 추력(推力) 200톤급인데 RD-151은 이를 약 170톤으로 낮춘 엔진이다. RD-191 역시 앞서 개발된 RD-170 엔진을 변형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RD-151엔진은 2009년 첫 발사 때부터 ‘개발과정에 있는 시제품’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별도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RD-191의 추력만 조절한 것이란 의혹도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2009년 7월30일의 로켓 시험 결과를 인터넷에 게시한 적이 있는데,
    RD-151이 아니라 RD-191과 URM-1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었다.
    아울러 로켓 엔진을 개발 중이며 연소 시험은 9월 초(2009년) 연말 전 모두 두 번 더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는 러시아가 당시 해당 로켓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3.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한때 나로호 로켓 1단을 러시아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고 홍보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나로호 로켓 1단은 전적으로 러시아가 개발했다. 당연히 기술도 배울 수가 없다.
    나로호는 한국 땅에서  발사하고 나면 국내에서 볼일이 없다.
    발사체의 핵심은 1단 로켓인데 국내에서 나로호와 동일한 모델을 개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그동안 국내 언론에서 제기됐던 나로호 발사와 관련된 문제점이다.

    그러나 筆者는 계속되는 로켓 발사 실패의 원인을 북한과 러시아의 오랜 군사협력 관계에서 찾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敵인 북한과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맺은 러시아가 유사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용이 가능한 장거리 로켓 기술을 이전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어온 북한과 舊소련의 미사일 개발협력 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舊소련 지원으로 진행된 北미사일 개발


    1970년대부터 진행되어온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초기 개발 단계에서부터 舊소련의 도움을 받았다.
    북한은 1960년대 말 소련과 ‘북한군 현대화를 위한 군사원조 합의’를 통해 미사일 개발능력의 기본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이를 통해 북한은 SA-2A 지대공 미사일을 바르샤바 조약국을 제외하고 중국과 쿠바에 이어 3번째로 배치했다. 1962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SA-2A 1개 대대가 평양 근교에 배치됐다. 당시 소련은 시스템 조립과 점검 및 유지보수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훈련을 제공했다.

    이후 소련과 중국 간의 국경분쟁과 스탈린 격하운동 등 소련의 국내 정치상황으로 북한과 소련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소련이 더 이상의 군사 원조를 중단했다.

    그러나 1964년 흐루시초프 퇴진 이후 양국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고, 뒤이어 1965년 5월 및 1967년 3월 북한과 소련 사이에 군사원조 재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합의에 따라 1965년부터 SSC-2B ‘샘릿’ 연안방어 순항 미사일, SS-N-2 ‘스틱스’ 대함(對艦) 미사일, 프로그(FROG)-5 미사일 등이 북한에 인도됐다. 북한과 소련의 군사협력 관계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이처럼 友好관계를 유지하던 북한과 소련의 군사협력 관계는 1990년 한국과 소련이 國交정상화를 이룩하면서 크게 악화되어 1990년대 말까지 관계가 개선되지 않았다. 

    푸틴, 김정일과 ‘미사일 기술교류’ 논의


    북한은 舊소련 붕괴이후 소원해진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관계 개선 및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2001년 4월 김일철 당시 인민무력부장을 러시아에 파견했다.
    이를 통해 북한과 러시아는 ‘방위산업 및 군사장비분야 협력협정’과 ‘2001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 같은 양국의 군사협력 관계와 관련해 당시 영국 언론은 러시아가 전투기, 정보수집 시스템, 첨단기술장비 등 총 3억5000만 파운드 상당의 무기를 북한에 판매할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의 무기거래에 정통한 소식통들의 경우 러시아가 단거리 방공시스템, 미그-29 전투기, 프첼라(Pchela) 무인 정찰기(UAV), 첨단 레이더 시스템, 소형 해군 순찰 함정 등을 북한에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협정은 북한과 러시아 군사협력 관계에 있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00년 7월 푸틴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확인한 뒤, 북한과의 미사일 기술교류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측 자료《격동의 2000》년에는 당시 북한과 러시아 군사관계자들 사이에 오고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原文을 그대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뿌찐의 평양방문과정에 조로공동선언이 채택되였다.선언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기의 미싸일강령이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순수 평화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확언하는 내용이 있다...(중략)
    ▲로씨야대사관의 한 성원은 “내가 오늘 감동 받은 것은 공동선언에 대한 김정일 동지의 명철한 해석이였다.김정일령도자께서는 미싸일문제와 관련한 조항에서 이것은 순수한 평화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훌륭한 문구를 내놓으심으로써 모든 문제를 그 자리에서 해결하시였다.정말 김정일령도자께서는 현명한 분이시다”라고 하였다...(중략)
    ▲로씨야국방상의 반영도 대단하다.그는 원래 로씨야전략로케트군 사령관을 한 전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싸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한다.
    그는 조선의 미싸일발전수준이 대단하다,지금 미국 놈들이 로씨야와 조선을 겨냥하여 전역미싸일이요,국가미싸일이요 하면서 수백억딸라를 탕진하고 있다,하지만 강력한 미싸일을 가지고 있는 로조(註: 러시아-북한) 두 나라가 힘을 합치면 미국 놈들을 죽탕 쳐 놓을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하 생략: 기사 전문은 '한국논단' 2월호에 게재 되어 있음.)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 ▲ 인터넷 <문화일보> 보도 캡쳐
    ▲ 인터넷 <문화일보> 보도 캡쳐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