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오진으로 생후 9년간 식물상태부모 노력으로 선천성 대사효소결핍증 발견약값 1년에 억대… 집 팔아가며 정부에 민원수입 약값 세금 내리고 보험 받게 돼 숨돌려장애인 성장하면 ‘스스로 먹고살기’가 과제사회복지관서 교육 후 한솔교육서 도서 업무장애인 도우며 근무… 직원들에게 좋은 영향부모들 “장애인 홀로서기 도와야 진정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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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미국의 오돈 부부에겐 로렌조라는 다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어느날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ALD라는 진단을 받고 곧 죽게 된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현대의학이 손을 뗀 상황에서 오돈 부부는 굴복하지 않고 직업마저 때려치운 채 직접 치료제 연구를 시작한다. 지식과 논리를 바탕으로 아들의 병마와 싸워 마침내 얻어낸 1kg의 소중한 기름. 학계는 이를 ‘로렌조 오일’이라 이름 붙였다.
미국 특허(Patent No.5,331,009)를 얻었고 여기에서 얻은 로열티는 로렌조와 비슷한 희귀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사업에 투자된다. 오돈 부부와 아들 로렌조의 이야기는 1992년 닉 놀테와 수잔 서랜던이 주연한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로렌조 오일’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도 로렌조 같은 희귀병 환자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많다. 임승준 씨는 5만명 중 한명 꼴로 나타나는 선천성 대사효소결핍증(PKU:페닐케톤뇨증)을 앓고 있는 희귀병 환자다. 나이는 30세이지만 아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뇌성마비와 증세가 비슷한 PKU는 신진대사에 필요한 효소가 부족해 생기는 질병이다. 밥은 안 먹어도 약은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게 임승준 씨의 삶이다.
어머니 정선자 씨는 승준 씨가 지금처럼 성장한 것이 그저 꿈만 같다고 했다.
“의사들은 처음에 승준이가 뇌성마비라고 진단했습니다. 아무리 뇌성마비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중증뇌성마비인 경우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모두 오진이었습니다.”
정 씨는 “당시 심정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숨만 붙어 있을 뿐 누워만 있는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간병한 지 9년 만에 국내 유일한 페닐케톤뇨증 전문가를 만나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에게 치료제를 먹인 뒤 1분이 지나자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홉 살까지 꼼짝도 못하던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믿어지지 않았어요. 이후 6개월 뒤에 걸음마를 시작하고 아이들의 상태는 급속도로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고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경제적 문제가 당장 피부에 와 닿았다. 워낙 희귀병이라 치료제가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아 유럽에서 수입해야 했다.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비싼 데다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1년 치 약값만 1억 원이 넘을 정도로 경제적 부담은 살인적이었다. 중산층 가정이던 이들 가족은 계속 집을 줄여나간 끝에 반 지하 방으로 옮겼다.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아이는 생명을 잃습니다. 청와대 등 당국에 수십 번 넘게 민원을 넣어 겨우 약에 붙는 세금을 낮추고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험 혜택을 받은 뒤에도 약값은 이들 부부에게 큰 부담이다. 게다가 페닐케톤뇨증과 관련해 더 나은 약이 개발되면 이 약을 국내에 들여오는 모든 일은 이들 부부의 몫이다. 보건복지가족부나 병원 등에서는 희귀질환자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 아이들 제가 가고 나면 어떡합니까? 제가 바라는 건 정부와 관련기관에서 승준이와 같은 아이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겁니다. 보험 혜택을 늘려 앞으로 혼자 살아갈 아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씨의 소원은 승준 씨가 부모와 주위의 도움 없이 혼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독립생활’이었다. 다행히 같은 동네에 사는 한솔교육 대표이사의 도움으로 승준 씨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희귀병의 아품 속에서도 성악가의 꿈을 키워왔던 승준 씨는 2012년 5월 한솔교육에 입사했다. 본사 정보지원센터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근무하고 있다.
정보지원센터는 한솔교육의 도서실이다. 본사와 현장 조직원이 도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서 대출을 행낭을 통해 주고 받는데 이 일이 승준 씨의 첫 업무였다. 회사 각 부서와 지사에 배송될 행낭 가방을 수거하여 행낭실에 옮기고, 당일 들어온 도서 행낭을 정보센터로 옮기는 일이다. 또 자료실에 비치되어있는 신문을 새로운 신문으로 매일 업데이트 하고 정기 간행물이 입고되면 해당 장에 비치하는 업무도 그의 임무였다.
2013년 초, 한솔교육이 가족친화경영의 일환으로 직원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자 사내에 카페(이하 ‘북카페’)를 마련하면서 승준 씨의 업무도 바뀌었다. 지금은 정보지원센터에 마련된 북카페에서 새로 고용된 2명의 장애우 동료와 함께 직원들의 카페 이용을 돕고 있다.
승준씨는 오전에 근무하는 동료와 함께 북카페 내부 청결 유지, 테이블 정리를 전담하고 있다. 가끔 오전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직원이 북카페에 방문하는 경우 기다릴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7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승준씨의 회사생활에는 함께 근무하는 동료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정보지원센터의 대리급 직원이 승준씨의 업무는 물론 다른 직원과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는 등 1:1 케어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부서가 달라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돕고 보살피는 것이다.
한솔교육은 승준씨처럼 장애인에게 적합한 업무를 찾아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와 인연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승준 씨보다 앞서 한솔교육에 입사한 장애인 사원이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회사내에서 서로 좋은 영향을 줬고, 그것이 또 다른 장애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인 고용은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는 중요 정책이기도 하다.
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청장년지원팀 박단비 팀장은 “우리 복지관에서 임승준씨가 직업훈련을 받았다. 한솔교육에 입사한 후엔 직무지도원이 사후 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의무고용률 이상으로 장애인을 채용한 사업주에게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반면 의무고용 기준을 지키지 못한 사업주에게는 장애인 고용 부담금을 부과하고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은 달의 미달 고용인원 최저임금액을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들은 장애인들의 제한적인 업무능력과 재정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채용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솔교육은 장애가 심한 중증장애인을 고용한 사례로 어려움을 안고 간 모범적인 사례다. 다른 기업들도 장애인의 한계를 받아들여 장애인들이 취업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 정 씨는 “승준이가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가 ‘내가 못하는게 많구나’라고 직접 깨우치고 있는 것 같다.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고 분위기 파악을 할 줄 알게 됐다. 장애가 있지만 하나라도 할 수 있는 걸 깨우쳐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한솔 교육에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라며 “전 직원이 점심시간에 손이 느린 승준이를 위해 기다려주기도 하고, 식판을 힘들어하는 승준이가 혼자 먹는 것이 안쓰러워 6개월 동안 도시락을 싸다주기도 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한솔교육의 장애인 고용 사례를 모범 삼아 정부, 기업 등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장기적 배려와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