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선 하루 운행 4분 넘겼다고 10만원 벌금
국토부는 ‘기사 제복․안내방송’ 등 겉핥기 대책
버스 하루 9시간이상 운전 못하게 규정 만들자
엄격한 안전규정 만들고 기사도 손님도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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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4월’이 5월로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전국 곳곳에서 대형화재 등 연이은 참사가 발생,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안전 사각지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정부도 허둥지둥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운수단체와 함께 사업용 대형버스 안전대책회의를 개최, 안전 위협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에는 대형버스 운전기사의 제복 착용을 의무화하고 관광버스의 대열운행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버스 안전사고에 대비해 운행 전 승객들에게 사고발생시 대처요령 등 안내방송을 실시하도록 했고, 전세버스에 가요반주기‧조명시설 등의 설치를 금지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이 대형버스의 안전을 강화하는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비교적 시행하기 쉬운 제복착용과 같은 지엽적인 대책들만 나열했다는 지적이다.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운전자들의 자격요건과 근무환경인 만큼 운전자들의 자격검증을 강화하고 장시간 운전대를 잡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시내버스 연쇄 추돌사고도 운전기사가 사고 당일 15시간 이상 운전하면서 피로가 누적된 것이 1차 원인으로 분석될 만큼 장시간 운전은 사고 위험성이 크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 대표는 “버스 사고 10건 가운데 9건이 운전자의 부주의ㆍ과실에 의한 사고이며 차량 결함 사고는 1건에 불과하다”며 “호주에서는 버스 운전자들이 하루 12시간 이상 근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했는데 우리도 안전을 위해 버스 운전자의 근로시간 제한과 자격요건 강화 방안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버스 운전사가 3시간 운전하면 30분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고 하루 9시간 이상 운전할 수 없고, 6일간 일하면 하루는 쉬어야 한다. 챠량에 부착된 ‘타코미터’에 모든 정보가 기록되는데, 위반사항이 발견되면 최고 1개월간 운행정지를 당한다.
스페인에서도 버스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운행 기록 보관함 ‘타코미터’를 경찰이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최근엔 버스 점검과정에서 하루 9시간 운행을 4분 초과한 버스회사에 70유로(약1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 일도 있었다.
EU(유럽연합)규정에 따르면 일반 관광 전세 버스는 1주일에 이틀은 하루 10시간, 나머지 5일은 9시간 이상 운행할 수 없으며 버스 기사는 4시간30분마다 45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돼 있다. EU 28개국에서 운행하는 모든 버스도 고속도로 상에서 시속 100km 이상으로는 주행할 수 없게 규정돼 있고, 버스 기사들은 제한 속도를 철저하게 지킨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유럽의 경우에는 운전자 기준으로 운행기록계를 관리해 운전자들의 하루 운전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하지만 우리나라는 차량 기준으로 운행기록을 관리해 운전자들이 장시간 운전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시외‧고속버스 차량은 시속 100㎞ 이상의 속도로 주행하는 일이 많은 만큼 휴식 보장과 적정시간의 근로여건 조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일부 주에서는 상습음주운전자 차량에 음주 측정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감지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에선 모든 관광버스에 음주 측정기 부착이 의무화 되어 있다.
기사가 시동을 걸때마다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넣고 알콜이 없어야 시동이 걸린다. 휴게소에서 쉬었다 갈 때도 마찬가지다. 알콜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시동은 30분간 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넣어도 소용없다. 대신 측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기사들은 귀찮아 죽을 맛이지만 버스회사는 벌금이 무서워 이를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인석 박사는 “음주운전은 상습성이 전제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기술적 규제가 같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복해서 안전교육 강화와 안전불감증 타파를 위한 시민의식 고양을 요구하고 있다.
황윤원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예산배정시 안전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안전은 잠시 머물렀다 가는 한직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서해훼리호 침몰,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각종 사고에서 그랬듯 사고가 발생해야만 관련기구나 제도를 만들고 다시 안전불감증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해방지를 위해 안전교육이 학교 현장에서부터 이뤄져야하고, 국민의식 개선 등이 절실하게 요구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