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율 유지...FTA·TPP 양허제외 '촉각'국회동의 험로...'쌀 대책' 보완해야
  • ▲ ⓒ농림부 블로그 캡처
    ▲ ⓒ농림부 블로그 캡처

     

    마침내 곳간의 빗장을 풀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당초 30일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발표 계획을 세워놓았던 정부는 일부의 반발을 의식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26일 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30일로 못 박아서 이야기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장관은 25일 농업인단체 간담회에서 "쌀의 상징성이나 농가들의 불안심리 감안해 안전장치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30일 발표와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주무부처의 장관들이 에둘러 표현했지만 스케줄상 발표시기를 마냥 늦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제 논의의 초점을 '쌀 고관세율 설정과 WTO와의 협상'에 맞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일부 농민단체들이 우려하는 개방후 관세화율 유지방안과 한중 FTA와 TPP협상에서의 양허 제외 등에 대한 정부의 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 ▲ ⓒ농림부 블로그 캡처

     

    ◇ 예상 관세율 400% 유력

     

    쌀 시장 개방의 핵심은 관세율이다.

     

    정부가 수입쌀에 높은 관세를 매겨 국내 시장을 보호할 수 있다는 뜻에서 '개방' 대신 '관세화'를 공식 용어로 쓰고 있는 이유다.

     

    관세율은 'UR 농업협정문 부속서'에 따라 '(국내가격-국제가격)/국제가격×100%'라는 공식에 따라 결정되지만 WTO와 쌀 쿼터국과 지난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

     

    정부가 잠정적으로 기대하는 관세율 범주는 500~200%.

     

    지난 20일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종료 관련 공청회'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송주호 선임연구위원은 400% 관세율을 제시했다.

     

    송 연구위원은 "국제 쌀값(FOB)이 t당 600달러 수준이고 환율은 달러당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 수입단가는 t당 66만원(5만2000원/80kg)"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세가 300% 일때는 국내 도입가격은 80kg당 21만원이 되고 400%이면 26만원, 500%이면 31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쌀값은 80kg에 24만6000원으로 관세율이 400% 이상이면 관세화로 인하 시장의 타격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모범 사례로는 일본의 1066% 관세와 대만의 563% 관세가 있다.

     

    1999년 일찌감치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개방 15년이 지났어도 수입쌀이 발을 못 붙인다. 자유시장에서 수입되는 쌀은 400t 정도로 점유율이 0.004%에 불과하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2003년 개방 후 지금도 시장을 통해 수입되는 건 500t에 불과하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농 등은 처음에 관세를 300∼500%로 높게 매기더라도 점점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FTA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쌀 관세를 낮추라는 압력에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관세화로 전환해서 쌀시장을 개방하는 경우에도 관세율을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관세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협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더욱이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관세율 협상을 거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도 이같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동필 농림부 장관은 "협상이 남아있는 만큼 잠정 관세율에 대한 외부 공표는 하지 않는 대신 국회 보고과정에서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상직 산업부장관도  "관세화를 하더라도 최대한 높은 수준의 관세율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FTA나 TPP 협상에서 쌀은 양허를 제외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 ▲ 항의하는 농민ⓒ뉴데일리
    ▲ 항의하는 농민ⓒ뉴데일리


    ◇ 정부가 믿음을 줘야...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신뢰다.

     

    '높은 관세율 유지와 FTA 제외'에 대한 약속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정부의 말대로, 정부의 뜻대로라면 상당부분 걱정은 덜어진다. 수입되는 쌀에 400%의 관세를 부과하면 현재 의무적으로 도입되는 양만큼만 국내로 들어오는 수준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관세율이 확정되거나 우리 뜻대로 FTA 협상에서 양허제외가 될 것이란 전망은 그리 높지 않은게 현실이다.

     

    정부의 소통 부족도 여전하다.

     

    개방이 대세인 시대에 관세화 유예를 계속 고집할 경우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도 잘알려져 있다.

    그래서 쌀 관세화 대한 일반 여론도 이전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다만 정부가 그동안 협상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는 할 말이 없어 보인다. 또 막판에 몰려 허둥댈 것이 아니라 진작 처리했어야 했다.

     

    지방선거 때는 표를 의식해 말도 꺼내지 않다가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쌀 관세화를 들고 나온 것은 정략적 판단에 다름아니다.

     

    야댱과 일부 농민단체들이 주장처럼 국회 논의의 장이 진작에 마련됐어야 했다.

     

    쌀 시장개방에 따른 후속 대책도 궁금하다.

     

    전문가들은 가격에 따른 국산 쌀과 수입쌀의 격차로 인해 수입물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다만 대만의 사례처럼 쌀 시장 개방에 따른 불안심리로 일시적으로 쌀 공급량이 늘어나 쌀 가격이 급락하는 등의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래서 우리 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

     

    우선은 우리 쌀의 품질을 높이고 생산을 규모화 시키면서 농가들의 경영위험을 완화시켜줘야 한다. 소비기반과 RPC 등의 유통부분도 역량을 최대한 강화시켜 국산 쌀 시장 안정을 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쌀 부정유통을 철저히 차단시켜야 함은 물론 국내산 쌀과 수입쌀의 수급관리에도 예측 가능한 중장기 매뉴얼을 마련해 생산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 시켜야 한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쌀 산업 발전대책안'을 이달 30일 발표할 예정이다.

     

    핵심은 △농업진흥지역 등의 우량 농지를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생산기반정비 농지 등을 농업진흥지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 △새만금 등 대규모 간척지를 쌀 생산과 가공 등을 위한 전문재배단지로 조성해 대규모 쌀 전문 영농업체에 분할 임대하는 방안 △수입쌀의 부정유통 방지를 위해 수입쌀과 국산쌀을 혼합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향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으로 생산자인 농민과 국회의 의견을 감안한 보완대책이 요구된다.

     

  • ▲ @농림부 블로그 캡처
    ▲ @농림부 블로그 캡처


    ◇ 국회 동의 ·보고 '험난'

     

    여야 간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25일 "올해까지는 쌀 관세화를 안하는 대신 연간 40만t만 수입하도록 돼 있지만 내년부터 관세화를 유예하기 위해선 수입 의무량을 크게 확대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의 두 배인 80만t으로 쌀 의무 수입량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관세화보다 수입량이 더 크다"면서 "관세화 추가 유예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과 관련해 "국회 차원의 공론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은혜 원내대변인은 같은날 국회 브리핑에서 "농민이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농업정책의 마지노선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관세화 문제는 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우남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상임위원장도 "원 구성 협상이 마무리된 만큼 농해수위와 산업통상위 등 관련 상임위에서 객관적인 자료 공개와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국회 동의와 보고 과정에서의 험로도 예상된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회 동의의 주요 근거인 '헌법 60조1항'의 동의 시점이 사전인지 사후인지 명확하지 않아 해석이 엇갈린다. 한미 FTA의 경우 정부가 협상을 진행한 뒤 사후 국회 비준동의를 거쳤다.

     

    정부는 기존 관례대로 정부가 단독으로 안을 만들어 WTO에 제출하고 국회 사후 동의를 받는 게 적절하다고 해석한다. 지난 2004년 쌀 관세화 유예 당시 국회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후속조치에서 또 다시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국회는 유예 당시 관세율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안이 먼저 국회 동의를 얻어야한다고 주장한다. 통상적으로는 사후 비준 동의가 이뤄졌지만 사안이 사안인만큼 정부안이 WTO로 제출되기 전 국회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