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유지' VS '先 대책 後 개방'
국회보고 '분수령'
WTO "매우 힘든 대화해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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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화는 유리한 것이 아니라 덜 고통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받은 관세화 유예는 특혜가 아니라 조건이다"

     

    농민단체들의 엇갈린 의견이다. 쌀 관세화 유예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찬반양측의 논쟁도 점점 불이 붙고 있다.

     

    현장의견을 듣기 위한 토론회는 전국농민총연맹측의 반발로 파행을 겪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동의없는 쌀 개방은 입법권 침해라며 특별법을 내겠다고 나섰다.

     

    20여년간 쌓여온 해묵은 갈등이 다시금 재연될 조짐이다. 하지만 정부는 더 이상은 늦출 수도 미룰 수도 없다며 관련 일정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일까지 막바지 현장 여론을 수렴해 관세화 의견을 정한 뒤 '6월 국회보고-9월 WTO 제출-2015년 관세화'  수순을 밟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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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상유지' VS '先 대책 後 개방'

     

    올 초부터 농민단체 주관으로 열리는 각종 토론회나 설명회, 간담회, 공청회에서 제기되는 의견이다.

     

    관세화 반대측은 한결같이 '현상유지(Stand Steel)'를 주장한다.

     

    최재관 전농 여주군농민회 교육부장은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는 쌀 관세화를 미루면서 의무수입물량을 더 늘리지 않아도 된다"며 정부가 최소수입물량을 현수준에서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농, 참여연대, 녹색연합, 경실련 등 46개 농민·시민단체들은 지난 4월 '먹거리 안전과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을 갖고 쌀 관세화·전면개방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관세화 불가피론을 주장하는 쪽은 '先 대책 後 개방'을 요구한다.

     

    가세현 한농연경기도연합회 정책부회장은 "관세화는 94년 UR협상에서 발생한 의무이기 때문에 유예는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DDA가 타결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필리핀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웨이버에 나선 것도 주지할 필요성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관세율 가변성 등을 염두에 두고 국내 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는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선은 '쌀 관세화'를 천명한 후 TPP 협상 참여로 농산물 시장을 최대한 보호하고 한·중 FTA 협상 마무리하는 것이 직면한 통상현안 해결의 해법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농림부장관을 지낸 한갑수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회장은 "쌀 생산 기반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충정은 이해되지만 노령화와 식생활의 서구화 등으로 이미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크게 줄었고 벼 재배면적도 매년 1.7%씩 감소하고 있다"며 "모든 여건을 감안한 쌀 산업 종합대책을 만들어 쌀 관세화 이후의 여건변화에 대비하고 WTO와 끈질긴 협상을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충고한다.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FTA나 TPP협상에서 쌀에 대한 양허제외는 범정부차원에서 공감하고 있다"며 는 "정책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통해 생산농가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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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보고...'분수령'


    계획대로라면 이달말쯤 정부가 가닥을 잡은 '관세화 방침과 관세율 범위'가 국회에 보고될 예정이다.

     

    농림부와 산업부는 "현행법상 통상업무를 하면서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보고를 통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전보고 형식을 빌어 쌀 관세화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민변 등 일부에서는 쌀 수입허가제 폐지는 법률 개정 사항이므로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고 고율의 쌀 관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쌀 관세화 특별법도 별도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서는 관세화가 불가피하더라도 현재 정부의 의견수렴 절차는 잘못됐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관세율 확정 이전에 국회-농민단체-정부 등 3자간의 토론의 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김영록 의원은 "이동필 농림부장관이 지난해 연말부터 쌀 시장 개방과 300~500% 관세율 등을 결단 운운하며 언급하는 것은 농정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6월까지 개방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현상태 유지를 위한 WTO와의 사전협상 등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는 이미 관세화에 관한 상당한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있다.

     

    국회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은 한 연구기관은 "개방유예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관세 산출기준을 중국쌀 수입가격과 aT의 도매가격을 활용할 경우 관세율은 500%에 달하고 환율·국제가격이 폭락해도 추가 반입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보고서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해 놓았다.

     

    정부는 20일 이후 국회보고를 통해 개방의 불가피성과 고관세율 유지방안, 농업종합대책 등을 설명한 뒤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 ◇ WTO "매우 힘든 대화해야 할 것"

     

    지난 1995년 1월 출범한 WTO는 1947년 이후 국제무역 질서를 규율하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를 대신하는 국제기구로 GATT에는 없었던 세계무역분쟁 조정, 관세인하 요구, 반덤핑 규제 등 강력한 법적 권한과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변화에 따른 다자통상체제의 핵심기구로 예외없는 개방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방한했던 호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과의 접견에서 "한국도 올해 말 관세화 유예시한이 만료되는 유사한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 회원국과 매우 힘든 대화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예를 인정받는 것은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구해야 해 사실상 매우 어렵다. 관련 회원국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방법도 있지만 법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국가들이 상당한 보상을 요구 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협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리핀 사례에 견줘 유예화 가능성을 묻는 박 대통령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일부에서 "쌀 관세화 유예는 한국 정부의 협상능력에 달려 있다"는 그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지만 진의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

     

    아제베도 총장의 발언은 "WTO 사무국은 회원국 간의 협상에 직접 개입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관련 회원국의 쌀에 대한 한국의 민감성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