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영업·자금력 앞세워 펠릿보일러 시장 잠식中企 도와주러 들어갔다 꿀꺽 "상생은 나몰라라"


  • 보일러 업계 맏형인 귀뚜라미보일러(회장 최진민)가 맏형으로서 역할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동생들의 밥그릇'까지 빼앗고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차려놓은 밥상인 목재펠릿보일러 시장에 후발주자로 참여해 막강한 영업력과 자금력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어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림청은 2008년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목재펠릿보일러 시범사업에 나섰다. 이후 2009년 가정용 목재펠릿보일러, 2011년 산업용 목재펠릿보일러 보급사업을 전개했다. 

     

    목재펠릿보일러는 목재 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조된 목재 잔재를 톱밥과 같은 작은 입자 형태로 분쇄한 후 건조 압축해 원통형의 알갱이 모양으로 만든 펠릿을 연료로 하는 보일러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보일러다. 비용이 저렴하고 열효율이 좋아 난방비가 40~50% 이상 절약되는 만큼 보급률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넥스트에너지, 규원테크, 일도바이오 등 중소기업들은 산림청이 시범사업을 실시하기 이전부터 제품 시판을 준비, 2009년 산림청과 에너지관리공단이 보급사업을 전개하자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대기업인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보일러도 2009년부터 이 사업에 진출했다.

     

    ◇中企 도와주러 들어갔다 펫릿보일러 '꿀꺽'

    당시 대기업인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보일러가 사업에 참여하게 된 배경엔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까지 난립하다보니 잦은 고장으로 인해 소비자의 불만이 높았고 고객 신뢰도까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산림청의 목재펠릿보일러 보급사업 인증 및 등록업체와 농림부의 농업용 목재펠릿보일러 사업 참여업체 목록을 근거로 살펴보면 당시 목재펠릿보일러 시장에 뛰어든 중소기업은 45개나 됐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선 신뢰도가 높은 대기업이 만드는 '메이커' 제품이 필요했다는 게 업계에선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친환경 보일러인 목재펠릿보일러를 외면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꺼내든 카드가 '대기업의 시장 진출 허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재정을 견디지 못하고 고사했다. 45개에 달하던 중소기업은 이제 넥스트에너지코리아, 규원테크, 일도바이오 등 3곳만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사업 초기엔 너무 소규모 기업으로만 구성되다보니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갖기 힘들어 대기업이 참여를 했다"며 "이제 시장이 어느정도 안정이 된만큼 대기업들은 목재펠릿보일러 시장에서 손을 떼고 자본과 기술, 유통이 필요한 해외시장 개척 쪽으로 눈을 돌릴 때"라고 지적했다.

     

  • ▲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
    ▲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

     

    이제는 중소기업 제품과 대기업 제품 간 품질이나 성능에서 기술 격차가 거의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더 이상 중소기업 제품이라고 이유로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동반성장위원회가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중소기업 제품과 대기업 제품 간 품질·성능 등 기술수준 격차는 없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는 중소기업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소기업인 넥스트에너지가 2012년 2월 국내 최초로 유럽인증(CE)을 취득했고 규원테크가 업계 최초로 펠릿보일러 인증을 획득했다. 에너지효율에 있어서도 중소기업인 넥스트에너지가 95.4%로 대기업인 귀뚜라미보일러보다 2~3% 높았다. 판매실적에서도 지난해 판매된 전체 펠릿보일러(2200대) 가운데 넥스트에너지가 절반에 가까운 1032대로 팔아 앞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귀뚜라미 678대, 규원테크 280대, 경동나비엔 179대, 일도바이오 31대 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보일러 시장의 1%도 안되는 연간 100억원이 조금 넘는 펠릿보일러 시장에 대기업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주장이다. 결국 목재펠릿보일러를 제조·판매하는 중소기업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한국산업로공업협동조합은 지난 3월 동반성장위에 펠릿보일러를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을 신청했다. 

     

    ◇힘들 땐 도와달라 호소 힘들다는 中企는 외면

    대기업인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보일러는 펠릿보일러 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신호였다. 중소기업이 상생을 외치며 이같은 신호를 보내자 경동나비엔은 즉각 반응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 7월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시장에서 철수한다. 고효율 미래 에너지 기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펠릿보일러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하지만 귀뚜라미보일러의 선택은 달랐다. 아직 동반위에서 결정된 사항이 없는 데다 펠릿보일러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 사업을 접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같은 귀뚜라미보일러의 반대로 펠릿보일러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은 8개월이 넘도록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과거 귀뚜라미는 기름보일러를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혜택을 받았던 기업"이라며 "대기업으로 성장한 지금 미래성장성이 밝은 미래 에너지라는 이유로 펠릿보일러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처사"라고 밝혔다.

     

    이어 "귀뚜라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일러를 만들고 사업을 시작한 업계의 큰 형님"이라면서도 "큰 형이면 큰 형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동생들 밥그릇'이나 뺏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아쉽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