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포선' 등 특허남용 규제
  • ▲ ⓒ특허청 블로그 캡처
    ▲ ⓒ특허청 블로그 캡처

     

    요즘 해외 경쟁정책 동향에서 단골로 등장하는게 '특허괴물'로 불리는 특허관리전문사업자(NPE·Non-Practicing Entities)다.

     

    NPE는 특허를 사들인 뒤 제조나 서비스 활동에 활용하지 않고 특허료를 받거나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해 이익을 얻는 회사를 말한다. NPE는 대개 사나포선(私拿捕船·Privateering), 끼워 팔기, 특허 담합, 다중소송 제기 등의 방식으로 특허권을 남용해 '특허괴물'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 기업은 좋은 먹잇감이다. 지난 2008년 43건에 불과했던 우리기업에 대한 NPE 제소 건수는 2010년 57건, 2012년 159건으로 늘었다. 지난해부터는 연간 200건을 훌쩍 뛰어 넘었다. 최근 5년간 삼성은 모두 172건, LG는 132건의 NPE 특허소송을 받아 피소율 기준 각각 세계 2위와 10위로 이름을 올렸다.

     

    제소규모도 천문학적 수준으로 건당 수백억원에서 수조원대에 달하고 있다. 분기당 5~6조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삼성전자가 1조원 가량의 특허권료를 지불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NPE가 왜 그렇게 특허소송을 남발하는 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NPE의 득세는 단순히 소송 건수가 늘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특허권 남용을 통한 경쟁 제한으로 불공정행위가 초래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 ▲ ⓒ특허청 블로그 캡처


    ◇ 칼 빼든 공정위, 지적재산권 심사지침 개정

    NPE가 특허권을 남용해 무차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마침내 공정거래위원회가 팔을 걷어 붙였다. 공정위는 23일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심사지침을 개정해 24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골자는 NPE 활동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쟁제한 가능성이 큰 행위부터 규제하겠다는 것.
    우선 정의 규정을 신설해 NPE를 '특허관리전문사업자'로 이름짓고 남용행위를 5가지 유형으로 구체화했다. △과도한 실시료 부과 △FRAND 조건의 적용 부인 △부당한 합의 △부당한 특허소송 제기 및 소송제기 위협 △사나포선 행위 등이 남용행위로 꼽혔다.

     

    표준필수특허(SEP: Standard-Essential Patent) 정의 규정도 마련됐으며 침해금지청구 관련내용과 남용행위도 추가했다. 아울러 지재권 행사의 '일반적 심사원칙'도 추가했다.

     

    △공정거래법 적용이 배제되는 지재권의 판단기준 △현행 불공정거래행위 중심의 심사지침을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중심으로 전환 △지재권과 시장지배력과의 관계 및 친경쟁적 효과 명시 △지재권 행사의 관련시장에 혁신시장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공정위는 이번 심사지침 개정을 통해 NPE와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권을 통한 독점력 남용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기반 마련과 함께 국내 기업들이 특허권 남용행위로부터 보호를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재권 분야에서의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통해 IT 등 신성장 분야에서의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 ⓒ자료=공정위
    ▲ ⓒ자료=공정위


    ◇ 사나포선과 국제공조...삼성·구글 적극 찬성

    눈길을 끄는 것은 이른바 '사나포선' 행위다. 공정위는 일부 제조기업이 특허괴물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상대 기업을 견제하고 공격하는 이른바 '사나포선행위'가 국내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나포선은 정부가 적국의 선박을 공격할 수 있도록 허가한 민간 무장 선박을 말하는데 특허 업계에서는 특허권을 가진 제조업체가 NPE를 아웃소싱 형태로 내세워 경쟁 기업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내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NPE가 특허를 사들여 소송을 제기하는 행위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과도하게 소를 제기하거나 특허를 남용해 경쟁사의 영업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독점 시장을 형성해 소비자 이익을 침해한다면 이는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사나포선행위의 경우 시장에서 기업의 비용을 높이고 경쟁을 제한해 결국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미국 등 해외 경쟁당국도 규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은 NPE와 소송 시 소송비용, 제품개발중단, 인력투입 등 유무형의 막대한 재정적 타격을 입게 된다. 또 NPE와 화해를 위해 막대한 합의금을 지불하기도 한다. 결국 NPE의 특허소송에 연루된 제품은 가격이 높게 책정되고 소송비용의 대부분은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노키아가 여러 경로를 거쳐 회사 특허를 특허관리전문회사(NPE)에 양도하고 이를 소송에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나포선 행위로 꼽힌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경쟁포럼'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경쟁당국이 참석한 가운데 NPE 규제를 논의하고 NPE 규제 현황과 법 집행 방향을 공유한 바 있다. 관련국들은 대부분 NPE 규제에 공감을 표했다. 삼성전자와 구글 등도 경쟁당국의 NPE와 사나포선 행위 규제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