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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한국납세자연맹은 "공무원연금 개혁법 통과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황당한 수급사례들을 발표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적게 내고 왕창 받고' '마르고 닳도록 받고' '수백억 자산가도 수십억 고액 연봉소득자'도 따박따박 연금을 받고 있었다. 도무지 개혁이라고 칭하기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연금 수급자 절반은 자녀 등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강보험도 무임승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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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소득 70억~80억 관피아도 월 400만~700만원 수령상위 1%의 부자 관료들에게도 월 700만원의 연금이 계속 지급되고 있다. 지금까지 1995년, 2000년, 2009년 등 세 차례 개혁이 있었으나 이 부분은 변함이 없었다.
법조계 출신으로, 장관급 자리까지 오르고, 국립대 총장까지 지낸 뒤, 공무원 월급이 대폭 오른 2000년대 초중반 즈음 퇴직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귀족연금을 받는 인사가 수두룩하다. 전직 총리, 국무위원, 정부위원, 고위 장성 출신들도 마찬가지다.
연봉이 87억원인 퇴직관료에도 연금은 지급됐다. 그나마 근로소득이 있다고 해서 절반 정도만 지급된 것이 다행인 수준이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받는 관피아 중에는 소득 전부를 자문료 등으로 갈음해 연금을 100%씩 그대로 받는 경우도 적지않다.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자산가에게도 월 400만원이 지급됐다. 부동산 임대소득은 지급정지 소득이 아니라며 100%를 지급했다.
월 300만원 이상을 받는 고액 수령자가 7만5000명에 달한다. 전체 36만명쯤 되는 연금 수령자의 20%에 이르는 숫자다. 해마다 1만명 이상씩 늘어날 전망이다.
부부연금 수급자의 가구당 평균 수령액은 558만원이다. 이번 개혁에도 변동이 없었고 오히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80년대 공직을 시작한 사람들은 수익비가 3.5배를 넘을 정도로 연금이 후하다.
폐지를 주어야 생활하는 최하 계층의 노인, 공원과 경로당을 오가는 차하, 복지관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차상, 최상은 역시 퇴직 공무원 부부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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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이상 장기수령자 2600명...90세 이상 696명
30년 이상 공무원 연금을 받는 장기 수령자가 2600여명이 넘는다. 이중 55명은 40년이 넘는 초장기 수령자다. 90세 이상도 696명에 달하고 3명은 100세가 넘었다. 본인 사망시에도 배우자 등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유족연금은 70% 수준까지 나온다.
20년 이상 가입하면 40대부터도 연금을 받을 수 있게 수급요건도 완화돼 장기수령자 비중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공무원 배우자들은 황혼이혼을 하지 않는다는 시중 우스개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요람은 아니라도 무덤까지는 보장받는게 공무원연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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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액 연금 반납 한 건도 없어...
연금개혁 초기 논의 당시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고액연금 수령자들이 자발적으로 연금 일부를 반납한다든지 수입이 충분할 때 연금수령을 일시 정지했다가 나중에 재개하는 식의 기여방식 시스템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연금의 본질이 사회안전망인 점을 고려할 때 연금 없이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자진해서 연금을 반납할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퇴직한 공무원들에게 재정안정화 기여금을 연금의 4%까지 떼 내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논의도중 흐지부지된 상태다.
공무원연금 최고 수준인 월 800만원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고 건 전 총리는 지난해 "고위공직자부터 나서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고위 공무원출신 한 국회의원은 "내 연금부터 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직 장차관들은 공무원연금개혁에 앞장서겠다는 서명까지 했다.
물론 지금까지 공무원 연금을 반납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 반납하거나 일시 중지하고 싶어도 제도적 방법이 없었다. 공무원단체도 이 부분은 환영하고 있다. 이충재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하후상박은 긍정적이다. 판사·검사·외교관 등의 봉급이 너무 많다. 우리 같은 하위직 공무원 입장에서는 차별을 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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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연금 수급자 절반, 건강보험료 무임승차
퇴직 후 공무원연금을 받는 수급자의 절반 이상이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 김현숙 의원(새누리당)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득구간별 특수직역연금 직장 피부양자 가입자 현황' 자료 분석 결과다.
공무원연금을 받으면서도 자녀 등 직장에 다니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건보료를 내지 않는 사람이 16만2637명이었다. 공무원연금을 받는 전체 수급권자(지난해 8월말 기준)가 33만8450명인 점에 비춰볼 때, 공무원연금 수령자의 절반 이상이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로 건보료를 전혀 내지 않고 건강보험 혜택을 보고 있었다.
◇ 숫자 조절하는 모수개혁 보다 뿌리부터 바꿔야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번 기회에 아예 공무원연금 개혁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여론이 많다. 숫자만 조절하는 모수 개혁 보다 뿌리부터 구조를 바꾸자는 주장이다. 후대에 책임을 떠넘기고 애꿎은 국민연금을 끌어들일게 아니라 흥청망청 수준의 공무원연금을 다시 뜯어고치자는 얘기다.
당장 재정절감을 위한 개혁이라면서 현재 20년인 최소 가입기간을 10년으로 줄인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불과 6년에 불과한 재정절감효과를 늘리기 위해 기여율과 지급율 조차 다시 손보자는 목소리도 높다.
결국 여야의 꼼수와 공무원 단체와 노동계의 몽니가 거센 역풍을 맞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