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힐 권리'요청시, 거부할 수 있는 심의 요건도 마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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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상현 기자

    "개인의 기본권 및 자유권을 신장하려면 '잊혀질 권리'를 강화하되, 권리 행사 등 이해 관계를 명확하게 조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최경신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15일 서울 잠실 광고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주최 '개인정보의 기술적·관리적 보호조치 기준 설명회 및 잊혀질 권리 보장을 위한 세미나' 발제자로 나서 이 같이 밝혔다.

    아울러 "잊혀질 권리 분쟁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잊혀질 권리는 인터넷 등을 통한 데이터 활용이 급증하면서 개인의 과거 행적 같은 정보를 삭제 혹은 확산 방지를 요청할 권리를 뜻한다.

    유럽연합(EU) 사법재판소가 지난해 5월 자신에게 불리한 10여 년 전 신문 기사에 대한 구글 검색 링크를 중단해 달라는 한 스페인 변호사 요청이 받아들여지며 '잊혀질 권리'에 대한 국내 공론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최 교수는 이날 "유비쿼터스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인터넷 상에서도 개인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 개인정보 삭제권을 강화하는 방향은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개인정보 삭제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다. 따라서 개인정보 삭제권의 권리 행사요건을 구체적으로 설정해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권리 행사요건을 설정할 때 다른 법익과의 균형을 꾀할 수 있는 절차나 수단이 필요하다"며 "잊혀질 권리 행사요건이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되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역사 기록의 필요성 등 타인의 기본적 권리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를 위해 "요건 설정 시 기술적 특성 및 실현 가능성, 정보 공개에 비례하는 책임, 다른 권리와의 합리적인 역할 조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분쟁해결 기관 혹은 개인정보 규제기관이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이 같은 '잊혀질 권리'에 대한 요청을 일부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잊혀질 권리를 도입할 경우 검토해야 할 요건으로 ▲권리행사 주체 및 방법 ▲검색배제 대상 및 요청요건 ▲검색배제 심의 시 고려요건 및 거부사유 ▲판단주체 ▲검색정보 심의·조정위원회 위촉 등을 제시했다.

    지 교수는 "개인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할 수 있게 권리행사와 주체, 방법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잊혀질 권리에 대한 검색배제 요청을 다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라며 "다른 심의 요건을 모두 충족한 경우라도 해당 게시글이 공인 또는 공적사안에 대한 내용인 경우 검색배제요청 거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잊혀질 권리 분쟁시 이를 해결하는 조정위원회 위촉 권한을 방통위에서 규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 교수는 "현재 방통위는 사생활 침해 등 권리 침해 관련 분쟁 조정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분쟁조정부를 두고 있다"며 "이와 유사하게 심의·조정위원회 역시 방통위에서 위촉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후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입법 필요성이 인정되기까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심우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데이터 산업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개인 정보가 유출되면 여타 사회생활에 예측 불가능한 제약이 발생할 여지는 부인할 수 없다"며 "하지만 입법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간의 규범과 조화적 형량이 전제로 돼야 하기에 법제화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 역시 비슷한 주장을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잊혀질 권리가 적용될 시 언론기사 자체가 삭제되지 않고 단지 검색링크만 삭제된다"며 "이처럼 단지 검색링크만 삭제된다고 해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적인 요소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므로 언론기사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구글의 경우, 범죄행위에 연루된 가해자가 형 집행이 완료된 후 관련 기사 링크 삭제를 인정하고 있다"며 "잊혀질 권리가 도입되면 범죄자들의 '범죄세탁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편 이 외에도 이날 토톤회에는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최성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권헌영 광운대 교수, 김영홍 함께하는시민행동 정보인권국 국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