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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이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온 8개월간의 고강도 구조조정을 매듭 짓는다. 이 회사는 그간 인력구조조정, 유사조직 통폐합 중심의 대대적 조직개편, 성과위주 연봉제 도입 등 뼈를 깎는 체질개선 노력을 해왔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 탓에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권오갑 사장이 "더 이상의 인력조정은 없다"며 사실상 구조조정의 마무리를 선포함으로써 어수선했던 조직분위기도 한층 안정됐다는 평가다.
권 사장은 1일 "회사의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이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현대중공업 전 임직원들에게 배포했다.
그는 더 이상의 인력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각 사업본부 대표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이양해 실질 대표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할 것을 직원들에게 알렸다.
또 회사의 목표와 비전을 만드는 미래기획위원회를 신설하는 한편 최근 선박 2000척 인도를 축하해 조건없이 전 직원에게 1000만원을 지급할 것도 약속했다.
◇인력조정·대대적 조직통폐합…숨가빴던 8개월
현대중공업이 체질개선을 위해 본격적으로 메스를 꺼내든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같은해 2분기 1조1037억원의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유래없던 위기감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중공웝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은 경영위기에 대한 책임과 위기극복을 위해 전 임원 사직서 제출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뽑아든다. 단단히 마음 먹은 만큼 결정도 일사천리였다. 대규모 개혁을 예고한 지 4일 만에 임원 262명 중 81명(31%)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돼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조선3사의 영업조직을 통합한 '선박영업본부'를 출범했고, 해외법인 및 지사도 통합해 효율적으로 운영키로 했다. 자연스레 7개 사업본부 체제 아래 부문 단위가 58개서 45개로 22% 축소되고, 전체부서도 432개에서 406개로 대폭 줄었다.
올들어서는 대규모 적자로 회사 손익에 영향을 주던 플랜트사업본부를 해양사업본부와 통합했고, 재정 IT 회계 홍보 등 경영지원분야를 우선으로 각 계열사간 유사업무도 지속 합쳐가기로 했다. 또 현대자원 개발을 현대종합상사로 이관했고, 현대기업금융 현대기술투자 현대선물 등 소규모 금융계열사를 하이투자증권 위주로 재편키로 하는 등의 사업재편도 진행 중이다.
최대 35%의 차등폭을 둔 성과위주의 연봉제도 새롭게 도입했다. 이전에는 사무직원의 경우에도 업무성과와 관계없이 연차가 오름으로써 일괄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시스템이었으나, 이 같은 방식이 직원들의 근로의욕 및 긴장감을 저하한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중공업 최고경영진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인력조정 부분이다. 이 회사는 올초 장기근속 과장급 사무직원 1300여명과 여직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각각 약 1200명, 170명 정도가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은 "본부 대표들과 수많은 검토 끝에 희망퇴직을 실시키로 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부하직원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너 그렇게 잘났어? 왜 쓸데없는 짓 하고 그래?라고 말하는 책임자들에게 채찍을 들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기록 중인데, 여전히 '우리가 제일 잘하고 있다'는 착각과 1등의 오만함에 대해 온갖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누군가는 경종을 울려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 사장은 "회사의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도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 와있고, 재료비 절감을 위한 노력도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더 이상의 인위적 인력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확실히 못박았다. 이어 구매 생산 영업 인사 등 대부분 권한을 각 사업본부 대표에게 넘기고, 해외법인의 경우도 해외에서 스스로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 본부별 책임경영을 대폭 강화키로 했다.
아울러 다양한 직급의 대표들로 구성된 미래기획위원회를 신설, 생산·사무직을 막론하고 경영진들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자주 갖겠다고 밝혔다.
◇조직분위기 추스렀으나 노조리스크 등 여전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8개월간의 고강도 혁신을 마무리 지으며 혼란스러웠던 조직분위기는 어느정도 추스렀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적자상태에서 벗어나 경영정상화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노조리스크 등의 과제도 산적했다는 평가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조원이 넘는 창사이래 최대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올 1분기 들어서도 1924억원의 손실을 내는 등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노조와의 갈등도 최고조로 치닫는 분위기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해 19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깨고 수차례의 부분파업을 실시한 바 있다. 올 들어서도 통상임금 확대소송, 임금협상 문제 등을 놓고 사측과 실랑이 중이다.
노조는 희망퇴직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무직 노조와 함께 기본급 대비 6.77% 인상한 12만7560원을 비롯해 고정 성과금 250% 이상 보장, 노후연금 현실화, 성과연봉제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근로조건 적용 등에서 사무직과 생산직의 기준이 다른만큼 양측의 임금협상도 별도로 진행해야한다면서 상견례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권 사장은 "지금은 우리 모두가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며 "우리의 일터를 살리고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회사, 사장의 문제도 아니고 노조위원장, 대의원들 만의 문제도 아니다. 현대중공업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회사를 살리는 일에 전 직원이 동참해 주길 진심으로 호소 드린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