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디폴트 일으킨 장본인국내 기업 위기에 빠트린 사례 많아
  • [헤지펀드 이대로 좋은가1] 지난주 삼성물산과 그룹을 중심으로 한 관련 업계에 파장이 일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장내 매수하며 성물산의 3대 주주로 단숨에 올라섰다고 '깜짝'공시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 목적을 위한 그룹 내 사업구조 재편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외국계 헤지펀드가 급제동을 걸면서 자연스럽게 엘리엇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힌 것이다.


    반면 엘리엇이 최근 일주일 가량 보여준 행보는 그들이 표면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삼성그룹의 경영권 문제, 주주가치 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대규모 지분 매입 이후 주가를 띄운 후 재매각을 통해 큰 시세차익을 남기고 빠진 수많은 '먹튀' 사례들을 봐 왔고, 엘리엇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업계에 대표적인 벌처펀드로 소문나 있다. 우선 아르헨티나를 13년 만에 다시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2년 국가 부도 당시 부도난 국채를 갖고 있던 채권단 중 93%와 채무 재조정에 합의했다. 채무의 약 71~75%를 탕감해주는 합의안에 채권단 대다수가 참여했으나, 엘리엇은 합의에 불응해 다른 헤지펀드 한 곳과 함께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들은 액면가 13억3000만 달러의 아르헨티나 국채를 4800만 달러 가량의 헐값에 사들인 뒤 소송에서는 액면가 전액을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이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르헨티나는 이미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단에도 전액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비슷한 방식으로 지난 2000년에는 페루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등,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며 미국 프록터앤갬블(P&G), 델컴퓨터 등 해외 유명기업도 엘리엇 전략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도 외국계 헤지펀드가 대규모 지분 매입 이후 주가를 띄운 후 재매각을 통해 큰 시세차익을 남기고 빠진 수많은 '먹튀' 사례들을 봐왔기 때문에, 엘리엇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삼성물산은 이미 11년 전 경영간섭에 나서다 거액의 차액을 남기고 떠났던 영국계 연기금인 헤르메스 펀드에 한차례 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다.


    헤르메스 펀드는 지난 2004년 삼성물산 주식 5%를 사들였다. 당시 투자 목적으로 공시하며 주식을 매입했지만, 곧바로 삼성물산 측과 접촉해 삼성전자 보유지분(3.4%) 매각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간섭에 나섰다.


    이로 인해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며 주가가 급등, 헤르메스는 총 38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두고 한국을 떠났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외국계 헤지펀드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이번 엘리엇의 행보를 계기로 업계는 지난 2003년 일어났던 'SK-소버린 사태'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영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은 SK 지분 14.99%를 보유던 중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끌어올린 뒤 곧바로 지분을 매각해 7557억원의 차익을 실현해 '먹튀'논란을 가져온 바 있다.


    소버린의 당시 행보 역시 현재 엘리엇의 전략과 비슷하다. 소버린은 SK를 상대로 투명 경영을 요구하며 경영진 퇴진을 추진했고, 우호지분을 확보해 최태원 회장을 압박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SK주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KT&G도 지난 2006년 외국계 자본에 휘둘렸던 전례가 있다.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던 칼 아이칸은 KT&G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선언, KT&G 주식 6.59%를 매입한 뒤 주주 자격으로 사외이사 1명을 확보해 이사회에서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는 행보를 보인 후 지분을 매각,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