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은행 출자부담 반발 수용'무리하게 밀어붙인 관치금융 실패'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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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가 출범 두 달을 앞두고 백지화됐다. 대신 유암코를 확대 개편해 구조조정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새로운 기업 구조조정 모델을 만들겠다며 공청회까지 연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백지화된 셈이다. ‘무리한 관치금융이 만든 실패작’이라는 비판과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꼬이게 됐다’는 비판을 모두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를 신설하는 애초의 금융위 방안 대신 유암코를 확대 개편하자는 은행권의 건의를 지난 17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유암코(연합자산관리 : UAMCO)는 지난 2009년 6개 은행(신한·하나·국민·기업·농협·우리)이 출자해 설립한 부실채권 처리 전문회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자산 유동화와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이 백지화되는 대신, 그 기능을 유암코에 맡기기로 한 것은 시중은행들의 강력한 건의에 따른 것이다. 당초 구조조정전문회사에는 신한·국민 등 8개 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 1조원, 대출 2조원 등 최대 3조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암코를 확대해 기업구조조정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은행들은 구조조정전문회사 신설을 위한 자본금을 출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명순 금융위 구조개선정책관은 “신규 설립에 따른 시간이나 인력 채용 비용을 줄이고 유암코의 구조조정 인력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은행들의 건의를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회사를 새로 세우면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당장 이렇다 할 실적을 내기 어려워 정부가 금융권에 먼저 압박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금융위는 유암코의 기능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구조조정 여력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다음달 중 유암코 확대 개편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구조조정전문회사에는 시중은행들이 1조원을 출자할 계획이었으나, 현재는 4860억원만 들어가 있는 상태다.

    이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기존 주주인 6개 은행 지분을 일부 인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해 남은 5000억원을 2조원(잠정)까지 늘린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부족하면 투자금 규모를 늘릴 수 있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한 논란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우선,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 무산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과 관련,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준비위원회는 당초 지난 14일 구조조정 회사 설립을 위해 50페이지 분량의 ‘주주 간 계약 확정안’을 마련한 후, 16일 최종계약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16일 오전 금융위원회 주재로 열린 회의 때 완전히 뒤집어졌다. 최종계약 당일, 구조조정전문회사의 기능을 유암코로 넘기는 방안이 처음 알려진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달 초 기자들과 직접 만나 구조조정전문회사 신설을 확언했고, 지난 11일 열린 공청회에서는 사무처장이 참석해 회사 설립을 독려하지 않았느냐”며 “이제 와서 뒤집는 것은 관치금융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책의 실패라는 증거”라고 쓴소리를 했다.

    애초에 민간 구조조정 회사 설립을 정부가 주도한 것부터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계속 지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민간 전문회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구조조정 시장 역시 하나의 독점 체제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기업구조조정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모두 떠맡기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대우조선해양·성동조선 등 자회사 부실로 허리가 휘는 산은과 수은인데, 이들의 부담이 더 늘게 생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