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간소화, 투자자 보호 등 제도 보완 목소리 높아
  • ▲ ⓒ 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 홈페이지 캡처
    ▲ ⓒ 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 홈페이지 캡처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달 1일, 박근혜 대통령의 북미 순방에 동행한 국내 신생 벤처기업인 마린테크노는 로스앤젤레스 빌트모어호텔에서 1:1 상담회를 갖고 앞으로 5년간 2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이 작은 기업의 수출 계약이 눈길을 쓴 이유는 바로 이 기업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증권형’(지분투자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한 1호 기업이기 때문이다.

지느러미 등 생선의 부산물을 이용해,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마린콜라겐을 생산하는 이 기업은, 지난해 9월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했다. 

GS로부터 기술개발 및 시제품 제작 지원을 받아 화장품 3종 세트를 개발한 마린테크노는, 올해 1월 25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펀딩에 나서, 43명의 투자자로부터 8천만원의 자금을 조달해 생산시설을 갖췄다.

지난 1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신생 벤처기업과 같은 초기 기업이 불특정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크라우드펀딩’이 법제화됐다.

위 법률은 온라인에서 기업이 다수의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온라인소액투자중개’로 정의하고, 주식 공모 절차 및 요건에 관한 규제를 대폭 풀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개정 법률이 인정한 크라우드펀딩은 ‘증권형’이라는 점에서, 위 법률을 ‘크라우드펀딩법’이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 참고로 법률에도 ‘크라우드펀딩’이란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업계에서 말하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정확한 용어는 ‘온라인소액투자중개’다.

제도가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서, 기대감도 커지고 있지만, 시장조사기관과 전문가들은 제도가 시장에 온전히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의적절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군중(crowd)으로부터 자금을 조달(funding)한다는 뜻을 가진 크라우드펀딩은, 스타트업(창업 초기 벤처기업)과 창업 전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 제안자 등 기존 금융권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창업 꿈나무’들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법제화 현황 및 구분

새로운 기업 자금 조달방식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크라우드펀딩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유럽과 미국이다.

유럽 각국은 2010년대 들어서면서 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법제를 만들고 있다. 미국은 2013년 JOBS(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법을 제정하면서, 크라우드펀딩의 법률적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은 2014년 5월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하는 등 크라우드펀딩 도입을 위한 법률 제도적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올해 1월 자본시장법 개정 법률안의 국회를 통과를 시작으로, 제도를 활성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 ‘소셜 펀딩’등으로 불린 크라우드펀딩은 투자자에 대한 ‘보상’을 기준으로, 기부형, 보상형(리워드형), 대출형, 증권형(지분투자형)으로 나뉜다.

기부형을 제외하고 보상형은 투자의 대가가 제품 혹은 서비스다. 대출형은 이자, 증권형은 주식을 투자의 대가로 받는다.


▶크라우드펀딩의 세계적 추세

시장전문조사기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진행 중인 크라우드펀딩은 119만건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유럽과 북미, 국가로는 영국과 미국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세계 최초의 크라우드펀딩은 2005년 영국의 조파닷컴(www.zopa.com)이 시작한 ‘대출형’이다. 이후 2008년 미국에서 최초의 기부형(후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인디고고가 출현하면서, ‘크라우드펀딩’이란 용어가 일반화됐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2007년 영국의 크라우드큐브(Crowdcube.com)가 최초다.

이들 외에도 랜딩클럽(대출형), 킥스타터(기부형) 등의 거대 플랫폼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성사시킨 펀딩 누적액은 20억달러를 훨씬 상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이후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2013년 5월 15일 ‘벤처-창업 생태계 선순환 방안’의 하나로, ‘크라우드펀딩’을 제시하는 등 집권 초기부터 이 제도를 주목했다.


▶갈길 먼 크라우드펀딩

크라우드펀딩이 ‘초기 기업의 생명줄’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대출형의 경우는 손실이 발생할 경우 법적인 보장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제도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 대 개인(P2P) 대출형태인 이 방식은, 증권형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대출형태가 법률상 ‘대부’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대부업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증권형의 경우도,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개인 투자한도는 기업 당 200만원, 연간 합계 5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개인 투자자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제한으로 이해되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개인 당 한도가 너무 작아, 오히려 투자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한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A기업이 2억원을 공모하고자 하는 경우, 수백 명의 개인투자자를 유치해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크라우드펀딩 업무를 주관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이 절차 간소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플랫폼 업계에서는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 펀딩을 중간에 포기하는 기업도 있다며,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펀딩을 중개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직접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의 빗장을 더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초기 생존확률이 낮은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서는, 펀딩을 중개하는 기업들이 시장을 선도해, 분위기를 끌어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법제화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지금까지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는 벤처캐피탈과 창업투자회사 등 지극히 제한된 이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다. 더구나 이들은 혁신적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발굴·육성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투자금 회수 가능성에 너무 높은 비중을 둬, 자금력이 취약한 기업 대부분은 투자를 위한 심사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알릴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시장 전문가들은 “초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입장은 이해한다”면서도, “제도가 정착단계에 접어들면 투자 한도 확대와 절차 간소화 등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