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심정 알린다는 데…집회 대리인에 맡겨 빈축"가대위 이탈, 100여명 보상 등 명분 잃은 시위 멈춰야"
  • ▲ 서울 강남역 주변, 반올림 집회장 모습. ⓒ최종희 기자.
    ▲ 서울 강남역 주변, 반올림 집회장 모습. ⓒ최종희 기자.


    서울 한복판에서 280여일째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이 무더위를 피해 바다로 휴가를 떠났다.

    집회는 대리인(?)들에게 모두 맡겨놓고 피서를 즐기러 간 것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서울 강남역 주변에서 하루 전날인 11일 기준 279일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틀 동안 집회장을 비운 것으로 확인됐다. '쉬고 와서 농성하자'는 취지로 1박 2일 바다 여행을 다녀왔다는 게 반올림의 설명이다.

    반올림은 이 같은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이런 내용들을 올렸다.

    이들이 휴가를 다녀온 사이 빈자리는 이른바 '집회 대리인'들이 메운 것으로 보인다.

    반올림은 여행에서 돌아와 "48시간 동안 농성장을 잘 지켜준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입장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평소에도 집회는 당번제 형태로 운영돼 왔다. 반올림은 이를 위해 '농성장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단체의 활동가 또는 농성장 지킴이로 불리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대신 자리를 채워준 셈이다. 반올림 소속 활동가들은 며칠 건너 한 번씩 농성장을 찾고 있다.

    반올림이 마음놓고 휴가를 떠날 수 있었던 까닭도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올림의 피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회는 시민이나 근로자들이 자신의 요구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최후의 보루다.

    놀 거 다 놀면서 벌이는 집회는 절박한 심정을 대중에게 알리는 시위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기업을 상대로 한 집회는, 재벌에 대항하는 약자라는 이미지가 있다"며 "그래서 자신들은 뭘 해도 정당하는 식으로 취해있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직업병 논란은 지난 2007년 황상기 씨가 사망한 딸(삼성전자 퇴직자)을 대신해 산업재해 신청을 하고 피해보상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쟁점이 됐다.

    이후 교섭단체 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8년을 끌어오다 올해 초 갈등이 풀렸다. 유가족 8명이 모여 만든 가대위(가족대책위원회)가 삼성과의 직접 협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가대위도 원래는 반올림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반올림 조직 구조가 유가족 중심이 아닌 활동가 위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발을 빼고 나와 독자노선을 밟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삼성이 만든 보상위원회에 참가키로 결정했다. 직업병 의심환자들이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겠다는 취지였다.

    보상위원회를 통해 같은 해 12월 말까지 100여명이 넘는 직업병 의심환자들이 보상금을 타갔다.

    반도체 공장과 직업병 사이 인과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삼성은 협력사 퇴직자들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시켜 돈을 지급하고 사과를 했다.

    그런데도 반올림은 집회를 멈추지 않고 있다. 가대위의 이탈로 진작에 시위 명분을 잃었지만 멈출 기색은 없다. 서울 서초동의 삼성본관 앞에서 대리인을 통해 280여일째 노숙농성을 진행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