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도산법 취지 살려 배임 논란 헷지해야
  •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컨테이너선 모형ⓒ연합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컨테이너선 모형ⓒ연합

     

    한진해운 발 물류대란 사태가 좀체 잦아들줄 모른다. 각계의 긴급 처방 제안은 쏟아지지지만 아직도 망망대해를 떠도는 한진해운 소속 선박은 80여척이 넘는다.

    해수부가 집계한 현황 자료에 따르면 11일 기준 한진해운 선박 141척 중 82척은 비정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컨테이너선  75척 중 55척은 가압류나 입출항 불가, 공해상 대기 상태다. 집중 관리 선박으로 분류된 41척 중 정상운항 중인 것은 9척에 불과하다. 그나마 벌크선이 상황이 나은 편으로 22척이 하역을 마쳤고 21척은 정상 운항 중이다.

    지난 10일 미국 법원이 우리 법원의 '선박 압류 금지'(스테이 오더)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기대를 품었지만 선박 압류가 해제된 배는 1척에 그쳤다.

    정부와 채권단은 법원의 긴급 자금 지원 요청을 거절했고 한진그룹의 뒤늦은 자구책은 '배임 논란'에 휩쌓여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으면 하역, 운송 등 물류대란의 근본 원인은 해결이 어렵다.

    관련업계는 올 해안에 한진해운이 용선료와 접안료등  미지급된 6500억원과 하반기 손실 4000억원을 포함해 1조원 가량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전 스페인에 4억여 원어치 화장용품을 수출한 박모 사장은 요즘 속이 타들어 간다. 한진해운을 통해 수출품을 선적했지만 배가 상해에서 압류당해 짐을 내리지도 옮기지도 못하고 있다. 결국 박 사장은 사태해결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다시 물건을 만들어 외국선사에 짐을 붙이기로 했다. 결국 4억원의 손해를 고스란히 떠 앉게 된 셈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지난 11일 총 4000억원을 투입해 중소 물류 업체에 자금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한진해운의 사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진해운의 대주주인 대한항공은 "이사회가 배임으로 인한 법적 문제, 채권 회수 가능성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 결과 선 담보 취득 후 대여하는 조건으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담보를 취득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관측이 한진그룹 내부에서조차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 사이 벌써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화물을 둘러싼 소송이 시작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통합도산법의 취지를 살려 누군가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조양호 한진그룹이 해줘야 정부와 산업은행이 움직일 수 있다” 며 “ 배임 등 문제를 들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건 정상기업 상태에 해당한다며 채권자인 동시에 책임자인 한진그룹의 책임 있는 결정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주주로서의 유한책임이 아니라 경영자로서 무한책임이 적용된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신규 자금을 재빨리 지원해 회사(한진해운)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계열사를 통한 자금 지원은 배임뿐 아니라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 행위에 걸릴 수 있다"며 "개별 회사에 이 모든 책임을 지우기보다 정책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새누리당 김성찬 의원은 "한진해운 발 물류대란은 국가신용도가 걸린 문제로 국가가 우선 채무관계를 해소하고, 한진해운이 장기적으로 상환토록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출자 예정인 1천억을 우선 사용 가능하도록 조치하고 장기적으로 자금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의원은 또 "공해상에 있는 화물선 70척을 이미 협약을 맺은 다른 항구나 부산항으로 보내 하역 또는 환적이 가능할 수 있도록 조속한 자금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