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낭비의 시간일까, 창조적 삶을 위한 소중한 시간일까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은 과연 요즘 같은 백세시대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이 마흔이면 거의 다 산 인생이라고 보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청춘은 60세부터라는 말이 훨씬 실감나는 시대이다. 

이렇듯 인생의 길이가 쭈욱 늘어난 요즘, 과연 50년 전의 1초와 오늘날의 1초는 같은 시간일까? 

요즘은 '시간은 금'이라는 말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말이 더 와 닿는 시대인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잠, 수면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너무도 오랜 세월, 우리는 수면 절제가 목표를 성취하고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댓가라는 ‘집단 환상’에 빠져 살아왔다.

‘4당5락’ 등 잠을 줄이는 행태를 미화하는 문화에 깊이 젖어 있으면서 수면의 중요성을 등한시해 온 것이다.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66)은 지난 4월 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 『수면 혁명(The Sleep Revolution)』을 펴낸 뒤 '숙면이 행복과 성공의 필수 요건'이라고 주장하며 숙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는 창업 초기 수면을 장애물 취급하며 일요일도 없이 하루 18시간씩 일해 수면 부족으로 쓰러져 광대뼈가 부러졌던 일을 회고했다.

그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따른 증상으로 판단력 부족과 기본적인 정보처리 능력 결핍, 잦은 짜증, 두드러진 기분 변화 등을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계속되는 돌발 행동과 막말을 '정치전술이 아닌 수면 박탈(sleep deprivation)에 따른 탈진과 그로 인한 충동 억제력 부족'이라고 파악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좋은 아이디어,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조급해하며 성질을 부릴 수도 있고, 운전기사 등 일부 직업의 경우에선 수면 부족이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수면은 반드시 존중해야 할 인간의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욕구다. 부족한 수면의 해악은 그동안 연구결과를 통해 잘 알려졌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하고, 비만의 확률을 높이는가 하면, 성장기 아동들에게는 성조숙증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뇌졸중과 심장질환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수면 부족이 지목되기도 한다. 이처럼 잠은 단순히 피로 회복의 가치를 넘어선다.

수면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다. 뇌에서 기억 강화 활동과 회복 활동, 신경학적 독소 제거 활동 등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적정량의 수면을 취하는 것이 깨어있는 동안 일하는 시간 일분일초의 값어치를 올리는 길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기계화에 이어 인공지능화 되어가는 시대에서, 많은 양의 일을 하는 것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사고방식이 생존의 핵심으로 요구되는 사회에서, 숙면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48분으로, OECD 평균인 8시간22분보다 1시간 이상 부족한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불면증은 최근 5년새 40% 증가했으며, 여성이 남성에 비해 1.5배 많다. 

현대 사회는 은퇴, 취업, 진학, 인간관계 등으로 걱정이 많은 시대다. 걱정은 불안으로, 불면으로 이어진다. 수면의 어려움이 일주일에 적어도 3일 이상 발생하고,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불면장애를 진단내릴 수 있다. 

최근 ‘수면제 오남용으로 기억상실, 폭식,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언론을 통해 수면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사고에 대한 보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수면제의 경우 필요한 때 적정량을 복용하는 것은 건강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분별하고 부적절하게 사용할 때 의존 및 남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불면증의 다양한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그 효과를 저해시키고 기면, 혼수 등 의식 저하와 같은 위험한 상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수면제의 오남용을 줄이려면 먼저 환자는 수면제를 안전하게 복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무턱대고 수면제를 복용하기보다는 올바른 수면 습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수면 건강 10계명 
 
1) 취침시간과 아침 기상 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며, 밤 불면을 막기 위해 낮에는 가급적 수면을 피해야 한다. 

2) 잠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잠을 자는 데 써야 할 시간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허비하지 않는다.· 

3) 잠자기 직전 지나친 운동은 금물이다. 침실은 어둡고 시원하게 유지한다.· 

4) 잠자리에서 시계나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특히, 잠들기 30분 전부터는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5) 잠 들기 1~2시간 전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6) 카페인이 들어간 음식은 피한다. 7) 배가 고프거나 과식한 상태로 잠을 청하지 않는다. 

8) 잠이 오지 않거나 도중에 깼을 때 누워 있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일을 하다가 졸릴 때 다시 잠을 청하는 게 좋다. 

9) 멜라토닌(뇌에서 분비되는 수면 유도 물질) 숙면제는 의존성이 없이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 

10) 공기는 덥지않게 하되 전기 방석, 온수 매트 등 바닥면을 따듯하게 하는 것은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

/적십자병원 병리과장(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