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가치산업 불구…경쟁력 약화에 줄줄이 합병기본설계 충실 등 엔지니어링 역량 고도화 할 때"

  • "우리나라의 건설엔지니어링 산업은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SOC 자본 축적에 기여한 건설 분야의 대표적인 산업입니다. 그동안 시공을 지원하는 분야로 중요성이 저평가됐지만, 부가가치율, 고용유발 등이 제조업의 3배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이죠."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고부가가치 산업인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설계 부가가치 능력을 기본으로 중동 등 해외플랜트 사업을 싹쓸이 하면서 한 때 각 그룹 계열 건설사의 알짜회사 역할을 했지만, 대외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시공위주 사업으로 수익성이 따라주지 않으면서다. 전문가들은 엔지니어링 산업의 기본인 설계기술과 능력을 확보하는 등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포스코그룹은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을 내년 2월까지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포스코ENG가 건설로 흡수합병되는 방식이다. 포스코ENG의 모태인 옛 대우엔지니어링을 인수한 지 8년6개월 만이다. 대우ENG 입장에서는 1976년 설립된 후 40년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된 셈이다.

    포스코건설은 합병 결정문을 통해 "기존에 중복된 지원 조직 및 운영비용 등을 축소함으로써 경영효율성이 제고되고, 궁극적으로는 회사 재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국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점이 합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ENG는 2007년까지 해외사업 매출 비중이 10% 안팎에 불과했으나, 합병(2008년 5월) 이후 해외 매출 비중이 37%로 증가했다. 문제는 외형은 불어났지만, 저가 수주 영향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점이다.

    해외 대형 프로젝트의 원가율이 치솟으면서 손실이 확대됐고, 결국 포스코건설의 연결 실적 훼손으로 이어졌다. 해마다 포스코ENG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포스코건설은 연결 순이익을 잠식당했다. 지난해 포스코건설은 개별 기준 1348억원의 순이익을 남겼으나, 연결기준 순이익은 262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포스코ENG는 42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김민형 건산연 연구위원은 "외환 위기 이후에도 구조조정을 위한 그룹 내 합병이 많이 이뤄졌다"며 "건설사와 엔지니어링사 등 두 개의 회사가 상승하는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고 판단한 그룹들이 엔지니어링사를 흡수합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앞서 건설사와 엔지니어링사를 별도 계열사로 뒀던 대기업들 역시 이처럼 합병하는 사례가 많았다. 현재 대림산업 플랜트사업본부의 전신인 대림엔지니어링은 1998년 흡수합병됐으며 이듬해 LG엔지니어링은 LG건설(현 GS건설)에 흡수합병됐다. 이후 LG그룹은 2010년 LG도요엔지니어링을 설립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서브원이 이를 흡수합병했다. 2000년에는 코오롱엔지니어링이 코오롱건설로 합병됐다.

    이제 대기업 계열사 중에는 삼성엔지니어링과 현대엔지니어링 두 곳만 남았다.

    업계에서는 엔지니어링 업계가 위축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엔지니어링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 플랜트, 해양산업 등 EPC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엔지니어링 기술의 고도화가 필수"라며 "이대로 가면 제조업 경쟁력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해외에서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단순 시공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 정책에 종속된 기존의 수동적 입장에서 탈피해 해외 영업전략 다변화, 이종 산업간 연계를 통한 고객 수요 기반의 역량 확보 및 서비스 다양화, 우수인력 유입을 위한 조직·경영 환경 재정비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지니어링사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력 확보에 역량을 모아 해외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엔지니어링사들은 상세 설계능력은 일부 갖추고 있으나, 기본 설계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고부가가치 프로젝트를 따내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문어발식 확장이 아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엔지니어링업계에 대한 지원책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정부는 '제2차 해외건설진흥회의'와 '제16차 경제관계장관회의' 등에서 건설엔지니어링 산업의 육성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지만, 실효성 없는 대책의 반복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영준 건산연 연구위원은 "산업 육성책의 안정적 추진과 함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 육성을 위한 세분화된 칸막이 규제 해소, 실적 정보 체계화 등의 추가 정책 과제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