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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손님에게 서비스로 주던 삶은 달걀 한 알도 이제는 줄 수가 없어요. 분식 장사 10년 넘게 해오면서 이렇게 계란값이 많이 오른건 처음입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가격을 올릴 수 밖에요."
서울 영등포에서 분식 포장마차를 13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김순옥(가명·63세) 씨는 치솟는 달걀 값에 울상을 지었다. 튀김과 떡볶이, 어묵탕, 계란빵 등 이곳에서 하루 동안 사용하는 계란은 3~4판.
김 씨에 따르면 최근 계란값이 1판 당 1500~2000원이 오르면서 1개에 700원, 2개에 1000원을 받던 계란빵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는 수준이 됐다. 가격이 오른 건 둘째 치고 계란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 조차 어려워졌다고 말 하는 김 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면서 달걀 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가운데 소규모 식당가의 '계란 한 알' 인심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형 양계 농가 여러 곳과 계약을 맺은 대형마트나 대형 식자재 업체들은 달걀 수급에 아직까지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지만 자영업자들과 길거리 포장마차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것. -
김 씨 가게 뿐만 아니라 영등포 일대 소규모 식당가의 상황은 대부분 비슷했다.
라면과 김밥 등을 주로 판매하고 있는 A 분식집 사장은 "하루에 쓰는 계란만 10판 가까이 되는데 가격이 올라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라면과 김밥은 가격을 500원만 올려도 고객들이 부담스러워 하는데 계속 이 가격에 팔면 수지타산이 안맞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택시기사 최병관 씨(가명·59세)가 수년째 즐겨 찾는 마포의 한 기사식당은 늘 제공하던 계란 프라이 서비스를 더는 주지 않기로 했다.
최 씨는 "뉴스에서 AI 때문에 계란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단골 손님한테까지 야박하게 계란 프라이를 안 줄 지는 몰랐다"면서 "고작 달걀 한 알에 너무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계란 값에 시름을 앓고 있는 것과 달리 대형마트는 비교적 수급과 가격 면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이었다.
이마트 목동점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계란 진열대에 제품이 가득 차 있었고 가격 변동도 없었다.
이마트의 한 판매 직원은 "계약된 농가가 수십 곳이 넘고 AI가 발견된 지역이 아닌 곳은 문제가 없는만큼 물량 공급은 원활한 상태"라며 "저녁이 돼도 계란이 완전히 동 나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코스트코와 빅마켓 등 일부 창고형 매장에서는 전국적인 계란 물량 공급 부족으로 인해 1일 최대 구매 수량을 1인 1판으로 한정하는 등 제한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가격이 오르기 전 미리 사둬야한다는 생각으로 계란을 구입해갔다. -
코스트코를 찾은 주부 김영옥 씨(가명·63세)는 "뉴스에서 계란값이 오르고 구하기 힘들어진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니까 미리 사두려고 나왔다"면서 "1인당 한 판만 살 수 있다고 해서 남편을 데려와 2판을 샀다"고 말했다.
코스트코의 한 직원은 "현재까지 계란 수급에 큰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를 대비해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평소 대비 계란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
유통 업계 관계자는 "대형 유통 업체들은 양계 농가 여러곳과 계약돼 있기 때문에 당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소규모 식당들은 대부분 소매 유통업자에 의존하고 있어 물량과 가격 변동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면서 "최근 AI 확산 기세가 꺽이지 않고 있어 대형마트도 마냥 안심할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경기도 안성의 야생조류에서 기존 확인된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다른 형태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두 가지 형태의 AI가 국내에서 동시에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늘 추가 방역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