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5N8형' 철새 의한 유입 근거 부실… 국내 잔존 바이러스 재발 우려 여전
  • ▲ AI 일일 상황점검.ⓒ연합뉴스
    ▲ AI 일일 상황점검.ⓒ연합뉴스

    역학조사위원회의 조류 인플루엔자(AI) 역학조사 신뢰도가 석연치 않은 설명으로 오해를 자초하고 권위를 실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역학조사위는 과거 유행했던 H5N8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의 국내 재검출과 관련해 철새에 의한 신규 유입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과학적 근거를 내놓지 못해 알쏭달쏭 역학조사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역학조사위는 지난 20일 AI 분과위원회를 열고 국내에서 발생한 H5N6형과 H5N8형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결과 등에 관해 심층토론을 벌였다.

    농식품부는 이날 역학조사위의 조류질병 전문학자들이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발표내용에 공감하고, 유전자 분석결과를 현장 방역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검역본부의 발표 내용을 보면 지난 13일 충북대 연구팀이 경기 안성천에서 채취한 분변에서 검출된 H5N8형 고병원성 AI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것과 차이를 보인다. 또 올해 인도와 중국, 러시아, 유럽 등에서 검출된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며 철새에 의해 최근에 새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럽 등지에서 검출되는 H5N8형 바이러스가 2014년 국내에서 발생했던 것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되는 만큼 검역본부와 역학조사위 발표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전 세계 과학자들은 독일 등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H5N8형이 2014년 우리나라에서 재조합된 뒤 (철새에 의해) 전파됐다고 본다"며 "이 유전자는 '한국 기원 H5N8형'(Korean Origin H5N8)이라고 불린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역학조사위원장인 김재홍 서울대 교수는 22일 진행한 백브리핑에서 "중국이 원발생국가이고 우리나라는 피해국"이라며 "중국은 AI가 발생해도 국제사회에 보고를 잘 안 하다 보니 최초 보고한 우리나라에서 H5N8형이 처음 발생한 것으로 오해가 생겨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보고된 바로는 중국에서 H5N8형 고병원성 AI에 의한 인체감염 사례가 17건이고 이 중 10명이 사망했는데 가금류는 (보고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많겠냐"며 "우리나라에서 H5N8형 발생을 최초 보고한 뒤 중국에서 나중에 보고하다 보니 최초 보고 인용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원발국처럼 오해가 생긴 거고 이제는 (국제기구에서도)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인용 횟수도 줄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김 교수 설명은 미흡한 구석이 있다. 김 교수 설명대로 2014년 발생한 H5N8형의 원발국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이더라도 당시 철새에 의해 중국에서 국내로 유입된 바이러스가 유럽 등지로 건너갔고, 분석결과 두 지역의 유전자형이 유사하게 나왔다는 설명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김 교수 설명은 우리나라가 원발국이 아니라는 의견일 뿐이다. H5N8형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새롭게 철새에 묻어 들어온 게 아니라 국내에 남아 있던 바이러스가 재발했을 가능성을 불식하지는 못한다.

    김 교수는 백브리핑에서 검역본부의 발표 내용을 전달했지만, H5N8형 바이러스를 옮긴 구체적인 철새 종류와 유전자 상동성 등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역학조사위는 검역본부의 발표에 공감하고 유전자 분석결과를 방역활동에 적극 활용해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서 교수는 "H5N8형 바이러스가 철새가 아니라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었고, 재발한 것이라면 방역의 방향이 달라져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의 H5N8형 원발국 의견에 대해서도 "역학조사위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불과 2개월 전쯤 나온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도 '한국 기원 H5N8형'을 언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16개국 32개 연구소로 구성된 글로벌 컨소시엄은 지난 10월14일자 사이언스지에 'H5N8형 AI 국제확산에서의 야생 철새의 역할'(Role for migratory wild birds in the global spread of avian influenza H5N8)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14년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H5N8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같은 해 11월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데 이어 12월에는 미국의 양계장에서도 발생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당시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분리된 H5N8형 AI 바이러스와 한국의 바이러스가 유전적으로 밀접한 유사성을 보였다"며 야생조류를 통한 전파 가능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