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버즈워드] 링크, 임베드 코드 등 제공했던 고전적 '그로스 해킹'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이래 누구나 사용하게 된 ‘해킹’이란 말은, 컴퓨터 시스템의 취약점을 타고 침입해 귀중한 정보를 빼가거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블랙 핵(Black hack)’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해킹의 원형인 핵(hack)은 가치중립적 의미를 가진다. 본래 무언가를 잘라내고 베어낸다는 의미인데, 대개는 그냥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복잡한 문제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해버리는 그런 행위를 뜻한다. 

역사적으로 해킹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건은 아마 ‘고디움의 매듭’일 것이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프리기아 왕국의 도시 고디움에 입성해 ‘매듭을 푸는 자가 소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전설의 매듭을 단 칼에 베어버리고 그 지역의 왕임을 선포했다는 일화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유행어 중 하나가 되어버린 ‘핵’은 이미 알려진 방법이나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독창적인 생각을 통해 문제를 뜻밖에 쉽게 해결하는 것을 말하게 됐다. “생활을 쉽게 만드는 삶의 핵 100가지” 같은 식이다. 

마케팅 버즈워드 중 하나로 꼽히는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로스 해킹은 스타트업 기술회사에서 의외의 방법으로 온라인 마케팅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이 알고 보면 어이 없을 만큼 간단한 방법을 지칭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미국 방언 연구회 회장 제시 시드로어(Jesse Sheidlower)가 ‘핵’과 ‘해킹’의 용례를 수년 동안 추적한 바에 의하면 이 단어는 본래부터 주로 좋은 뜻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2014년 3월 6일 뉴요커 지) 



  • 그로스 해킹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사례는 ‘핫메일’의 초기 런칭 캠페인이다. 1996년 런칭된 핫메일은 이전의 이메일과 다른 브라우저 기반의 이메일 서비스였다. 당시 핫메일은 핫메일을 통해 내보내는 모든 메일 하단에 “핫메일에서 무료 이메일 계정을 만드세요”라는 태그라인에 하이퍼링크를 붙여서 클릭만 하면 가입 페이지로 갈 수 있게 했다. 지금은 이미 너무나 당연한 방법이 되어버린 이 캠페인 덕분에 핫메일은 불과 6개월만에 1백만 명의 신규가입자를 끌어들였다. 

    페이팔(Paypal)의 이베이 점령 사건, 유튜브의 임베드 코드 제공, 드랍박스(Dropbox)의 친구추천 제안, 페이스북의 폐쇄적 네트워크 제공 등, 하룻밤 사이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같은 온라인 기업들의 성공사례를 보아도 지금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미 깨버린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처음엔 ‘해킹’ 즉 묘수에 속했던 그들의 방식이 지금은 전세계적 표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이들의 최초 성장 동력은 어느 한 가지 ‘해킹’이 아니었다. 틀에서 벗어난 방식, 창의력, 즉 마케팅과 광고업계의 금과옥조인 ‘크리에이티비티’ 그 자체였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그로스 해킹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그로스 해킹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로스 해킹 아이디어들에 어떤 뚜렷한 패턴이나 규칙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해당 사업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고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 사고를 통해 얻어낸 아이디어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로스 해킹의 전문가란 기술자나 마케팅 전문가가 아닌,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로스 해킹에서 영감을 받은 듯, 요즘엔 ‘그로스 마케팅’이라는 용어도 버즈워드 대열에 합류했다. 그로스 해킹이 런칭 초기에 단숨에 사용자들을 모은 것처럼, 마케팅 깔대기의 입구 부분을 늘려서 더욱 많은 잠재고객을 확보하는데 주력하는 마케팅 전략의 일종이다. 하지만 깔대기의 입구를 차지하는 ‘인지도’의 일정 비율이 꼭 구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상품이 태어나고 사멸하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온라인 환경이라고 다를까? AOL의 ‘디지털 전도사’ 데이비드 싱(David Shing)은 일년 동안 한 사람이 모바일에 설치하는 앱의 개수가 전세계적으로 평균 0개라고 했다.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번영보단 생존을 위한 ’해킹’이 더욱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