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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우리나라에 대한 '보복성 경제조치'를 취한 중국이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는 공정한 무역을 주장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7일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와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EU의 반덤핑 관세 계산법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한다며 WTO 분쟁해결기구의 심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EU가 중국을 비시장경제국으로 간주하고 '정상가격'의 기준을 중국의 국내 가격이 아닌 유사국가의 가격을 이용해 계산하는 데 반발한 것이다.
덤핑이란 수출국이 수출 대상 국가에서 정상가격보다 싼 가격에 제품을 파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정상가격은 수출국 국내 가격을 기준으로 삼지만, 중국은 2001년 12월 WTO 가입 당시 시장경제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더 비싼 제3국의 가격을 적용받았다. 대신 가입의정서에 '15년 후 WTO 회원국은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를 부여하기로 한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중국은 지난해 말로 15년이 지났으니 시장경제국 지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 EU 등은 자동인정은 아니라며 꺼리고 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의 유입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중국의 시장경제국 인정을 둘러싼 갈등도 더욱 심화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 사안을 두고 WTO에 미국과 EU를 제소했고, 3개월의 협의 기간이 끝남에 따라 심리를 위한 WTO 분쟁해결 패널 구성을 요청했다. 다만 제소 때와 달리 이번에는 EU만을 대상으로 했다.
WTO 규정상 EU는 중국의 요청을 1차례 거부할 수 있지만, 재차 요청하면 패널 구성이 이뤄지고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달 29일 주EU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중국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비난과 보호주의 움직임은 세계무역 환경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국제법 규정을 근거로 자국을 겨냥한 규제를 비판하고 나선 중국이 정작 우리나라에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는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구두지침을 통해 한국관광을 전면 금지하고 롯데마트의 현지 지점 절반가량에 대해서 소방법 위반 등을 이유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산 전기강판에 37.3%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사드 배치 결정이 이뤄진 직후 나온 판정이다.
WTO는 '정치적 이유로 무역 제한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조치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WTO 규범에 어긋나는 점이 없는지 살핀 뒤 위반사항이 있을 시 제소도 검토하기로 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중국의 시장경제국 지위 부여를 둘러싼 논란이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이뤄진 일련의 경제적 조치 모두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이 공식 문서가 아닌 구두로 지침을 내리거나 현지법 위반을 명분으로 삼는 등 교묘하게 규정을 피해가고 있어 제소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