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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세계 주요 43개국 중 3번째로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급팽창하며 곧 터질 것 같은 위험을 안고 있지만 이에 대한 준비는 여전히 미적지근한 모습이다.
위험 신호는 가계부채 규모 증가뿐만 아니다. 연체율 역시 4월말 기준 전월대비 소폭 증가하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가계부채 뇌관은 그동안 잠잠해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모습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제 경제부총리만 선임됐을 뿐 그와 손발을 맞출 금융위원장 선임에는 늦장이다.
결국 선장 없이 대한민국 금융은 가계부채 태풍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
◆가계부채 바이러스, 주담대에서 마이너스통장으로 전이
가계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부동산 시장의 이상 징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규제로 억눌러있었던 부동산 투기 심리가 문재인 정부에서 재발한 것이다.
서울 재개발 단지를 중심으로 폭등한 부동산 가격은 가계부채를 부채질 한 꼴이다.
실제 은행권의 자체 주택담보대출 상품 취급 규모는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자체 대출상품은 자제하는 대신 정책모기지상품 위주로 고객들에게 소개한 것이다.
대신 마이너스대출 잔액이 5월말 기준 39조9000억원으로 한 달 사이 6000억원 늘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집값 상승과 함께 부동산거래가 증가하면서 보조대출로 마이너스대출을 활용한 탓”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마이너스대출 규모와 함께 연체율도 상승 중이란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밝힌 4월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연체율은 0.54%를 기록했다. 이는 한 달 사이 0.03% 포인트 소폭 상승한 것으로 주로 신용대출 부문에서 상승을 주도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연체율은 0.48%로 전월말 대비 0.05% 포인트 상승해 가계의 이자 빚이 높아지는 추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이주 내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미국과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1.25%로 같게 된다.
여기에 FOMC가 연말에 한 차례 금리를 추가로 더 올리면 미국과 한국 간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현재 대출 이자도 높아지게 돼 가계부채 연체율도 급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
◆7월말 종료되는 LTV·DTI…빈자리 채우긴 부족한 DSR
부동산 금융시장의 규제 핵심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7월말 종료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연장 여부와 이를 대체할 DSR 조기 도입 등을 관계 부처와 논의 중이다.
일단 새 정부는 가계부채와 집값 폭등세 진정을 위해 부동산 규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를 담은 가계부채 관리방안은 오는 7~8월 중 내놓기로 했다.
현재까지 들려오는 소식은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고 6억원 이상 대출 받을 때 LTV 한도는 현 70%에서 40%로, DTI한도 역시 60%에서 40%로 축소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사실상 자금줄을 조여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것인데 자칫 주택 구매 실수요자까지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
부동산 규제에 따른 대응책으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틈을 메울 것으로 보인다.
DSR은 연간 소득 대비 대출원리금의 상환액 비율을 말한다. 금융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을 포함한 것으로 부채 상환 능력에 따라 돈을 빌려주겠단 것이다.
일단 금융감독원 주도로 시중은행에서 DSR을 적용해 시범운영에 착수했다. 은행들은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DSR의 적용비율 상한선을 결정,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문제는 시기다.
LTV·DTI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2014년 8월부터 상향 조정돼 유효기간이 1년, 두 차례 연장된 바 있다.
이를 연장하거나 과거와 같이 축소하기 위해선 금융감독원이 20일간의 예고기간과 행정지도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지난해의 경우 5월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예고기간을 거쳐 연장됐지만 올해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여기에 DSR 시범운영까지 더하면 적어도 3개월간의 규제 공백으로 부동산과 금융시장 모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
◆가계부채 놓고 내각 장관끼리 딴소리…정착 금융위원장은 부재
협치는 정부와 여당, 야당 사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관계부처 간 협력과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계부채를 놓고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같은 듯 다르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가계부채 증가 원인에 대해 “LTV·DTI 규제 외 저금리 기조나 주택시장 호조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김 부총리는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한적이다. 소비, 부동산 등 연결된 사안으로 긴 호흡이 필요하다”며 당장 LTV·DTI 비율을 낮출 필요성이 크진 않다는 견해를 내놨다.
반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의 LTV·DTI 규제 완화가 지금의 가계부채 등 문제를 낳은 요인”이라며 DTI·LTV 규제 환원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다만, 김 후보자는 “LTV·DTI 규제 완화 연장 여부는 가계부채 증가세, 주택시장 동향, 대출 동기와 지역별·계층별 여건 등을 감안해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충분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가계부채와 관련해 다른 시각을 내놓았지만 결국 시간이 필요하단 맥락은 같다. 그러나 시간을 재촉한 건 한국은행 쪽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창립 67주년 기념사를 통해 “앞으로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상황이 보다 뚜렷하게 개선될 경우 통화정책 완화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부동산 시장의 자금줄을 조이며 안정화를 시킬 수 있지만 금리가 올라가면 서민들의 빚 폭탄은 결국 시간문제다.
이 모든 이해관계를 메워줄 인사는 바로 금융위원장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장관 인사 명단에는 빠져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은행권을 관리할 주무부처는 금융위원회다. 장관 인사가 늦어지면서 은행권도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 지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