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우선채용 규정 논의 본격화됐지만…"직역간 밥그릇싸움 구경하는 복지부"
  • 의사 보건소장 우선 채용을 놓고 보건의료계 간 밥그릇 싸움에 불이 붙었다.  


    25일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보건소장에 임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지역보건법 시행령 제13조1항 개정 논의가 최근 한창이다.

  • ▲ 국가인권위원회 저동 청사 ⓒ연합뉴스
    ▲ 국가인권위원회 저동 청사 ⓒ연합뉴스

    이는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건소장의 의사 우선임용을 차별 행위로 판단하고 복지부에 지역보건법 개정을 권고한 데 따른 것. 복지부는 지난 24일 보건의료계와 의견조회를 위한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문제가 되고 있는 현행 지역보건법 시행령에는 보건소에 보건소장 1명을 두되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 중에서 보건소장을 임용하도록 돼 있다. 다만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 중에서 임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건·식품위생·의료기술·의무·약무·간호·보건진료 직렬의 공무원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의사 우선임용 조항에도 의사 보건소장 비율은 크지 않다. 통계청 2015년 통계 기준 전국 252곳 보건소 가운데 의사 보건소장은 41% 수준인 103명이다. 이중 약사는 2명, 간호사 18명, 의료기사가 81명이다.


    시행령에서 의사를 우선적으로 임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사 비율이 적은 가장 단편적인 이유는 처우 문제다. 자리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연 5000만~8000만원 수준으로 낮은 편인지라 하겠다고 나서는 의사가 많지 않다. 


    대한의사협회는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등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인 보건소장은 의료 전문가인 의사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의사 우선임용 조항 개정 논의가 시작되자, 서울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 두 곳에서 60여명의 의사가 시위에 나설 만큼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타 의료인들의 보건소장 역할 수행은 국민 건강관리에 있어 제한된 보건의료 범위 및 검증되지 않은 지식, 진료보조자로 제한된 면허의 업무범위로 인해 포괄적인 보건소 기능을 수행하기에 전문성이 결여된다"면서 "건강권을 담보로 한 직역 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반대로 대한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간호사협회 등 입장은 극명히 엇갈린다.


    지방의료원장은 비의사도 임명이 가능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의사면허를 가진 자를 보건소장으로 우선 임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행위라는 입장이다.


    보건소의 업무에 의학뿐 아니라 보건학 등 다른 분야 관련 사항도 많다는 점, 각 보건소에는 보건소장을 제외한 의사를 1~6명 두어 전문적인 의료업무를 수행토록 하고 있는 점 등에서 의사를 우선적으로 채용할 이유는 없다고 반박했다.


    한의협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의사 출신 보건소장이 있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를 명확히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면서 "의사 출신 보건소장이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오랜 시간 일해온 보건직 공무원들은 오히려 오랜시간 보건소 업무를 해오면서 이해도나 업무역량을 보이고 있다"면서 "지자체에서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법조항 때문에 의사들을 기다려야 하지만 정작 의사들은 낮은 처우로 인해 관심이 없다. 상황이 그렇다면 역량 있는 이들이 채용되는 것이 맞다. 개정을 반대하는 것은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라고 지적했다.


    정작 복지부는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직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복지부는 인권위 권고에 대해 불수용 입장을 보였지만 최근 청와대의 인권위 권고사항 수용률 제고 지시 이후 입장을 바꿔 법 개정 검토에 나섰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복지부는 24일 간담회에서 '인권위 권고에 불수용 입장을 보였지만 인권위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면서 "그러면서도 보건의료법상 특정직역을 우선하는 조항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다소 상충된 입장을 전했다. 접점을 마련해 실마리를 풀어야 할 논의의 장이 오히려 명분쌓기용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복지부 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이제 겨우 입장 청취를 하는 논의 초반 단계여서 이렇다할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기한을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빠르게 논의 결론을 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