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도제식 환경개선·유의미한 페널티·병원 쇄신 뒤따라야"
  • 전공의들의 보호를 위한 이른바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과도한 폭력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폐쇄적인 도제식 의료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폭행 방지를 위한 유의미한 페널티 마련뿐 아니라 수련병원의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전히 매맞는다"…국립대병원 국정감사, 전공의 폭력사태 잇딴 지적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국립대병원 국정감사를 진행하면서 의료교육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공의들의 폭행·성폭력 피해사례를 폭로했다.

  • ▲ 부산대학교병원 정형외과 A교수에 의해 폭행을 당한 전공의 사진. ⓒ유은혜의원실
    ▲ 부산대학교병원 정형외과 A교수에 의해 폭행을 당한 전공의 사진. ⓒ유은혜의원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에 따르면 부산대학교병원의 정형외과에서 A교수에 의해 폭행당한 전공의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모두 11명에 달했다.‘습관적인 두부 구타로 고막 파열’, ‘수술기구를 이용한 구타’, ‘정강이 20차례 구타’, ‘회식후 길거리 구타’, ‘주먹으로 두부 구타’등 폭행은 수차례 여러 사람에게 이뤄졌다.


    병원 측은 당시 노동조합이 제기하면서 폭행사실을 인지했지만 가해교수 처벌은커녕 사건을 축소·묵인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유 의원은 설명했다.


    전북대병원도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 6월 선배 전공의들의 폭행과 폭언으로 1년차 정형외과 전공의가 사직, 정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전공의 1년차 동기부터 교수까지 환자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 폭행을 하고 폭언과 욕설, 금품갈취, 얼차려, 왕따 등 온갖 가혹행위를 다했다"며 "폐쇄적인 도제시스템에서 폭력이 대물림되면서 갑을관계가 형성된 대표적 의료계의 적폐이기에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외 올 한 해 수련과정에서 전공의 폭행이나 성추행에 대한 사건들은 또 있다. 성형외과 교수의 폭행·폭언사건이 발생한 한양대병원 외에도 삼육서울병원(가정의학과 상급년차의 폭행), 양산부산대병원(교수의 여성 전공의에 대한 성추행) 피해자가 정부에 민원을 접수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2명이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감장에서 잇딴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는 전북대병원에 대한 수련정원 조정 등 중징계 방침을 밝히는 한편, 논란이 되고 있는 병원들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를 예고했다.


    ◆의료계"도제식 환경개선·유의미한 페널티·병원 쇄신 뒤따라야"

    지난 2016년 12월, 전공의들에게는 의미 있는 입법이 시행됐다. 과도한 초과근무와 도제식 교육 환경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폭행과 폭언 등을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전공의특별법'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련병원에서의 전공의 폭행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드러난 사건 말고도 수면아래 가라앉아 있는 현실은 더 잔인하다는 것이 전공의들의 토로다.


    서울 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를 하다 상급 전공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A씨는 "병원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오히려 의국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서 "지도 교수와 병원 측은 오히려 피해자인 나를 보호하려 하기보다 몰아세웠고, 고소 취하를 종용했다. 문제제기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덮고 병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지도교수가 전공의 장래를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권한이 있는 도제식 전공의 교육시스템의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교수의 말이 법이 되는 조직문화 속에서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 의료계 조직 자체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 새로 수련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서 " 병원마다 일률적인 시스템으로 전공의가 배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행 발생 시 개선으로 이어질 수있는 유의미한 페널티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한 수련병원의 B전공의는 "폭행 등에 대해 정부가 병원에 내릴 수았는 가장 높은 수위의 페널티인 전공의 정원 감축은 남아있는 전공의에게 더 많은 일을 부담하게 하는 것 외 근본적 해결책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자체적인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병원이 피해자를 감추려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제대로 처벌하는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것.


    실제로 10여년 전 수도권 K대병원장으로부터 수련 과정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은 파견 전공의가 자살했던 일이 있다. 해당 원장은 수술방에서의 과도한 폭언과 폭행으로 소문이 무성했는데 이 일로 병원장 사퇴, 퇴직 등 불명예를 쓰면서 병원 전반적으로 분위기 쇄신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C교수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윤리적으로 둔감한,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르는 의사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의 대학병원들도 있다. 결국 병원의 양심이 중요한 것"이라면서 "병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처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여전히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