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조 일자리안정자금이 쿠션 역할재정 부담·근로경력 상실 등 부작용 확대 우려
  • ▲ 최저임금.ⓒ연합뉴스
    ▲ 최저임금.ⓒ연합뉴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관련해 올해는 정부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으로 충격이 완화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1만원 공약 달성을 위해 내년 이후 평균 15% 수준의 인상이 계속된다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 나왔다.

    KDI는 내년 이후에도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고용감소 폭이 커지고 임금질서가 교란될 수 있다며 인상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이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고용의 영향에 관해 국책연구기관이 처음으로 내놓은 분석이어서 주목된다.

    4일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이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분석자료를 보면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말미암은 고용감소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사업주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좌우된다고 했다. 종사자를 줄이는 것은 사업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므로 사업주는 가격 인상이나 수당 삭감, 근로시간 단축 등의 대응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만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처럼 경제 내 모든 임금이 동시에 같이 오르면 개별 기업은 경쟁을 우려하지 않고 가격을 인상할 수 있어 고용감소 폭은 작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수출 제조업은 국제경쟁력 하락을 이유로 가격 인상이 여의치 않아 고용을 조정하므로 저임금 제조업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수준은 임금중간값과 최저임금을 비교해 평가한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이 낮은 미국은 이 비율이 2016년 기준으로 35%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실질기준으로 최저임금이 84% 인상돼 임금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37%에서 5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최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이 높은 국가들과 비교할 필요가 있으며 최저임금의 임금중간값 비율과 최저임금 근로자 규모를 고려할 때 2005년의 헝가리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위원은 이를 도식으로 계산하면 국내 임금근로자 수를 2000만명으로 할 때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 규모는 최대 8만4000명이 된다고 추산했다.

    최 연구위원은 그러나 올 4월까지 고용동향을 보면 고용감소 효과가 이보다 작을 거라고 판단했다.

    올해 고용증가 폭이 1월 32만명에서 4월 14만명으로 18만명 줄었으나 고려할 게 적잖다는 것이다. 우선 1월 고용 증가 폭이 예외적으로 높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연평균 증가 폭 26만명과 비교하면 감소 폭은 12만명쯤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구증가 폭이 지난해보다 8만명쯤 줄어 임금근로자 증가를 5만명쯤 감소시켰으므로 인구 감소 효과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고용증가 감소 폭은 7만명 수준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15~24세와 50대 여성, 고령층의 고용감소도 뚜렷하지 않다고 했다. 4월 현재 15~24세 남녀의 임금근로자 비율이 지난해보다 1.6%포인트(P) 줄었으나 이를 모두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볼 수 없고, 같은 기간 15~24세 남녀 실업률이 2%P 하락했으므로 경제활동참가율 자체가 하락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 연구위원은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 도입이 시장의 충격을 줄였다고 분석했다. 지난 16일 현재 일자리안정자금 신청 규모는 195만명으로, 이는 전체 대상자의 90%에 달한다.

    최 연구위원은 "일자리안정자금이 고용감소 폭을 줄였다면 앞으로 지원 규모가 인상 폭에 비례해 확대되지 않을 경우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연구위원은 내년과 후년에도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다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내년 이후 최저임금이 평균 15% 인상하면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이 매년 12%쯤 상승하는데 이는 최저임금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높은 프랑스 수준에 도달하는 만큼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최 연구위원은 2017~2020년 최저임금과 시간당 임금 분포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이 계속되면 최저임금 인근에 밀집된 임금근로자 비중이 급속히 증가할 거라고 봤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범위가 최저임금의 1.2배까지라고 할 때 영향을 받는 임금근로자 비중은 2017년 9%에서 올해 17%, 내년 19%, 2020년 28%로 상승한다.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증가하면 고용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고용영향 탄력성값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탄력성이 최저임금 근로자 증가 비율에 비례한다고 가정할 때 고용영향 탄력성은 내년 -0.04, 2020년 -0.06으로 증가가 예상됐다.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이 끊기고 최저임금이 내·후년에 15%씩 오른다면 고용감소 규모는 내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으로 확대된다는 얘기다.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이 15%씩 오르면 고용감소보다 노동시장 임금질서 교란이 더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 이후 15%씩 최저임금이 오르면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이 프랑스 수준에 도달한다"며 "프랑스가 2005년 임금중간값의 60% 수준에 도달한 이후 추가 인상을 멈춘 이유도 임금질서의 교란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단순노동 업종인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의 15~64세 인구 1인당 연간 취업시간을 비교한 1999년 자료를 보면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이 높을수록 취업시간이 짧았다. 당시 프랑스의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은 0.61, 미국은 0.35였다. 1인당 연간 취업시간은 프랑스 175시간, 미국 304시간이었다. 프랑스 최저임금 근로자의 연간 취업시간이 미국의 58% 수준에 그쳤다. 최저임금이 임금중간값에 육박할수록 단순노동 일자리가 줄어들어 취업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한국은 지난해 임금근로자 연간 취업시간이 217시간이었다. 이는 1999년 자료와 비교할 때 독일과 같은 수준으로, 독일의 임금중간값 대비 비율은 0.47로 프랑스 못지않게 높았다.

    최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이 올라 하위 30%의 근로자가 같은 임금을 적용받으면 경력에 따른 임금상승 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근로자의 지위상승 욕구가 약화되고 인력관리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 규모가 급속히 증가한다는 것도 문제다. 최 연구위원은 "올해는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이 조성돼 최저임금 인상 안착에 도움이 됐지만, (앞으로) 최저임금 근로자가 많이 증가하므로 필요자금 규모도 급속히 확대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는 정부가 최저임금 근로자의 사회보험 기여금을 부담했으나 그 액수가 국내총생산(GDP)의 1%(한화로 17조원)에 도달하자 최저임금을 추가로 올리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최 연구위원은 "내년과 후년에도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 순기능(득)보다 부작용(실)이 커질 수 있다"며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경제 전반에 걸쳐 가격과 근로방식의 조정에 따른 비용을 급속히 증가시키므로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