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스에서 댐 붕괴라는 이례적인 사고가 발생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 일단 천재지변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비한 설계와 부실시공에 따른 사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라오스통신은 세피안 세남노이댐의 보조 댐 붕괴로 24일 현재 여러 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고, 수백명이 실종상태라고 전했다.
댐에 가둔 50억㎥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7개 마을이 초토화됐다. 정확한 인명피해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수가 숨지고 수백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 1300가구가 물에 잠기고 66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라오스 정부와 시공사인 SK건설 쪽은 헬리콥터와 보트로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류 마을들이 지붕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흙탕물에 잠기고, 일부 주민들은 지붕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인 점을 보면 인명 참사 규모가 커질 개연성이 있다. 현지시각으로 저녁 8시께 댐이 무너진 만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외신과 SK건설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지에는 며칠째 폭우가 쏟아졌다. 튼튼하지 못하게 지은 댐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붕괴됐거나, 저수 용량을 초과할 정도의 강우 유입으로 범람하면서 붕괴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보인다.
사고 발생이 평년보다 3배 이상 많은 집중호우가 내린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천재지변에 따른 사고를 추측할 수 있다.
정우상 라오스 한인회장은 "최근 그 지역에 일주일 사이에 비가 1100㎜ 정도 왔으며 일요일(7월22일) 하루에만 440㎜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며 "홍수가 난데다 보조 댐 D가 추가 붕괴돼 유량이 증가해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5개의 보조 댐 중 네 번째, 다행히도 규모가 제일 작은 보조 댐이라고 한다. 22일부터 균열이 발생해 주민대피령도 내려져 있었다. 오후 5시경에 완전히 붕괴가 돼서 저녁 8시경에 하류 쪽으로 물이 내려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사고가 발생한 댐은 본 댐과 주변 보조 댐 5개로 이뤄졌다. 보조 댐은 대개 본 댐에서 방류한 물이 한꺼번에 하류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본 댐 아래에 작은 규모로 짓지만, 사고가 발생한 보조 댐은 본 댐 하류에 지은 것이 아니라 본댐 주변에 건설됐다.
댐으로 유입된 물이 본 댐 주변 다른 계곡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도록 건설한 댐으로 별도의 수문을 설치하지 않은 단순한 물막이 둑 개념으로 지어진 셈이다.
SK건설 측은 "집중호우로 단시간에 댐 유역 수량이 급증했고, 이 과정에서 보조 댐 일부가 유실돼 하류에 피해가 발생한 것 같다"며 "긴급 복구 작업에 돌입했으나, 댐에 접근하는 도로 대부분이 끊기고 폭우가 이어져 작업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고 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리자 하류 홍수를 막도록 본 댐에서 물을 가뒀으나, 이를 버티지 못하고 보조 댐 쪽에서 범람하면서 댐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 사흘간 지속된 폭우로 상류에서부터 떠내려 온 토사와 각종 부유물들이 쌓여 댐 기능이 상실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범람을 예상하지 못하고 보조 댐 일부가 붕괴됐다는 점에서 댐 운영 관리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댐은 안전을 위해 담수 능력 이상의 물이 유입될 경우를 예상해 미리 방류하는 것이 원칙이다. 엄청난 물이 유입됐더라도 댐의 범람에 대비해 수량을 실시간으로 관리, 미리 방류했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안전학)는 "자연 범람일 경우 시공사의 책임은 물을 수 없다. 만약 수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면 그건 시공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반대로 홍수가 났는데도 수문을 열지 않아 범람됐다면 그건 관리자의 관리 소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대형 댐은 집중호우시 유입량이 급증하는 것에 대비해 본 댐 수문 외에 여수로(비상 수로)를 만들어 만들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만약 사고가 발생한 댐에 여수로가 없다면 설계 부실 탓도 제기될 수 있다. 국내 소양강댐이나 대청댐과 같은 대규모 댐은 본 댐 옆으로 여수로를 만들어 댐 담수능력을 벗어난 물이 유입돼 범람하는 것을 사전에 막고 있다.
부실 설계·시공 주장에는 공기 단축 영향도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SK건설은 지난해 4월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의 세남노이댐 공사를 마치고 물을 채우는 임파운딩(Impounding) 기념행사를 열었다.
당시 SK건설은 보도자료를 통해 "향후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대비해 계획보다 4개월 앞당겨 댐 공사를 마무리하고 담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난공사 구간인 수로터널(11.5㎞)을 포함한 15.7㎞ 길이의 용수로 공사를 671일 만에 마쳤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댐 준공을 앞당기면서 SK건설은 발주처로부터 2000만달러의 보너스를 지급받았다. 공사 조기 완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셈이다.
관건은 본 프로젝트가 SK건설이 시도한 국내 최초 해외개발형 수력발전 모델이라는 점이다. 개발형 사업이란 단순 시공뿐만 아니라 개발·건설·운영 등 전 단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장기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는 방식이다. 일회성 건설수주 수익뿐만 아니라 준공 후 27년 동안 운영하면서 연간 전력판매액 1300억원에 따른 배당수익도 추가로 가져가는 구조다.
발전소를 일찍 가동할수록 투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는 만큼 운영 수익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앞당겼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 SK건설 측은 "댐 준공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조기 완공한 것이고, 발전소 상업 가동시기는 내년 2월로 변동이 없다"며 "정상 스케줄대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고는 라오스 지역의 폭우로 인한 범람이 원인이지, 공기 단축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술한 현장 관리와 부실한 위기대응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SK건설 본사는 사고 조짐 소식을 듣고 23일 저녁 1차로 본사 관리자들을 현지로 보낸 데 이어 24일에는 안재현 사장을 현지에 급파했다고 밝혔다. 현지 시간으로 24일 1시30분에 마을 침수 피해가 접수됐지만, SK건설은 사고 내용을 쉬쉬하다가 25일 자정이 지나서야 공식적으로 사고 경위를 밝혔다.
현재 SK건설은 현지와 서울 본사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구조 활동을 지원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SK건설 측은 "라오스 정부와 공조 하에 이번 사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사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신속히 취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현재까지 확인된 우리 국민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주라오스 대사관이 사고 인지 직후 현장상황반을 구성하고 영사협력원, 해당 건설업체, 교민 네트워크 등을 통해 우리 국민 피해를 파악했다"며 "현재까지 확인된 우리 국민 피해는 없다"고 말했다. 건설작업 중이던 SK건설 근로자 50명과 한국서부발전 근로자 3명도 모두 사전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