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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설 도박 시스템이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입출금은 대포통장으로 이뤄지고, 사이버머니로 환전을 한 이후 예상이 적중할 경우 들어온 사이버머니는 다시 현금으로 되돌려받을 수 있는 스포츠 도박 사이트와 운영 방식이 같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FX(외환) 마진거래를 위장해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일당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 사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환율거래를 중개하는 척하면서 회원 6600여 명에게 약 50억원 규모 불법도박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전에도 전현직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들이 주축이 돼 불법으로 인터넷 주식 선물 도박 사이트를 만들어 개미 투자자들을 유인한 사례가 주기적으로 적발돼 왔다.
베팅을 통해 돈을 번 회원과 잃은 회원의 비율은 6대 4 정도로 돈을 벌어간 회원이 많았지만 사이트 개설 및 운영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회원들이 벌어간 금액은 소액인 반면 잃은 금액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도박판에서는 돈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불법 선물 도박사이트에서도 적용되기 때문에 투자에 참여한 개미들은 돈을 잃고, 사이트 운영자는 돈을 벌었다.
이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불법 스포츠도박과 원리가 비슷하다.
회원들이 코스피200 지수의 등락을 예측해 베팅을 한 후 결과가 맞을 경우 이미 들어온 투자금에 수익률 만큼의 금액만 더해 회원에 입금시켜주면 되지만, 결과가 틀렸을 경우 투자금 전체가 운영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간혹 높은 수익률이 발생하거나, 특정 회원이 지속적으로 높은 적중률을 보였을 경우, 운영자는 임의로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거나 계정을 삭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베팅을 방해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계정을 차단당한 회원 역시 자신이 불법 사이트에 가입해 이용을 했기 때문에 도박혐의를 받게 되는 만큼 쉽게 신고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사이트 운영자들은 악용했다.
특히 정상적인 선물 거래를 하려면 1000만원 이상의 계좌 예치금이 필요한 반면, 이들이 만든 미니 선물 도박 사이트의 경우 단돈 3만원의 예치금으로 베팅이 가능해 진입장벽도 낮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선물 투자 지식은 있지만 수천만원대 예치금을 마련할 능력이 없던 이들이 정상 선물 거래 대신 미니 선물 도박의 유혹에 빠졌다"고 말했다.
또 "사설 불법 선물거래 사이트는 투자금 정산을 전적으로 운영자가 담당하기 때문에 운영자가 잠적할 경우 금전 피해는 고스란히 회원들 부담으로 남게 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경찰은 최근 적발한 FX 마진거래 체험장 대리점들과 도박 사이트 회원들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환율의 등락은 국내외 수많은 경제조건의 변화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사이트 회원들이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이 사이트는 '우연한 기회에 재물을 취득하도록' 하는 불법도박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FX마진거래의 거래 방식에 관해 자본시장법상 법적 규제가 모호한 점을 악용하고 있다"며 "전국 각 지역에서 FX 마진거래 체험장을 차려놓고 투자 회원을 유치하고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