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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제2 쇄빙연구선 건조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내년 사업 재추진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세 장관으로 불리는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남극 세종과학기지 설립 30주년을 맞아 브이아이피(VIP) 축하 영상 메시지까지 받아 승부수를 띄웠지만 무위에 그쳤다.
9일 해수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제2 쇄빙선 예타가 지난 5월 '미시행'으로 결론 났다. 미시행은 평가위원이 경제성과 정책성 등을 따져봤을 때 현재로선 사업을 시행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을 말한다.
제2 쇄빙선 예타는 평가에서 계층화 분석(AHP)값이 0.291로 나왔다. AHP값은 기준치인 0.5를 넘겨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제2 쇄빙선 예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기평)이 맡아 2016년 1월25일 조사에 착수했다. 애초 해수부는 중대형선 건조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을 들어 1만2000t급을 신청했고, 과기평은 과잉사양이라며 5000t급으로 가위질했다. 자료 보완 등을 거치며 과기평은 6500t급까지 양보(?)했으나 해수부는 최소 아라온호(7487t급) 수준은 돼야 한다고 주장해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이후 예산권은 기재부가 갖되 연구·개발(R&D) 예타는 과기부로 넘어가면서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기대를 크게 밑도는 결과가 나왔다.
해수부는 현 정부 실세 각료로 꼽히는 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세계 해양강국을 실현하겠다"고 비전을 제시한 데 힘입어 극지 개척을 위한 제2 쇄빙연구선 건조를 밀어붙였으나 체면을 구겼다. 특히 예타 진척이 지지부진하자 지난 2월 남극 세종기지 준공 30주년 축하 영상에 문 대통령 메시지까지 담는 승부수를 띄웠음에도 빈손이 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미래 성장동력인 극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며 "제2 쇄빙연구선과 코리아루트 같이 가슴 뛰는 도전을 국민과 함께 응원하겠다"고 제2 쇄빙선을 콕 집어 힘을 실어줬었다. -
그러나 내년 예타 재추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해수부는 3년 가까이 예타를 추진하면서 과기평의 요구로 이미 수차례 제2 쇄빙선 활용 추가 수요 등 관련 자료를 보완, 제출해왔다. 쇄빙연구선이란 특성상 과기평이 혹할 만한 뾰족한 수요가 나올지 의문이라는 견해가 적잖다. 이에 대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과기평이 애초 제출한 보고서만 평가에 반영하고 나중에 보완한 자료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조사한 추가 수요의 현실성 등을 살피고 이를 토대로 내년 3월까지 적절한 선박 규모를 도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동안 국가 R&D 예타권을 쥐고 있던 기재부도 해수부의 예타 재도전이 녹록지 않을 거라고 본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과기부가 기존 사업을 다시 기획해 예타에 재도전하는 것을 막지는 않을 것"이라며 "(과기부로 예타권이 넘어간 지 얼마 안 돼) 성공사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간접자본(SOC) 부문의 경우 교통수요가 달라지면서 나중에 예타를 통과한 사례는 있다"면서 "AHP값이 0.4를 넘으면 그나마 여지가 있지만, 제2 쇄빙선의 경우 0.2 후반으로 평점이 낮고 무엇보다 평가위원 10명이 만장일치로 '미시행' 결론을 냈다"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일각에선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김 장관 등 국회의원 겸직 각료의 여의도 복귀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상황에서 실세 장관도 풀지 못한 숙제를 후임 장관이 해결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