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예시' 제시 수준 해명 불구 혼란 가중… "고유권한 문제 없다" 주장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등 서울서 가장 비싼 땅 10곳 중 7곳 100% '껑충'
  • 자료사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 자료사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정부가 감정평가사들에게 ㎡당 시세 3000만원이 넘는 토지에 공시지가를 최대 2배까지 인상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예시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명과 함께 국토부 고유권한인 만큼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업무를 위임해 땅값을 평가하는 감평사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7일 감정평가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부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한국감정원의 지가공시협의회 회의에 참석해 감평사들에게 고가 토지에 대해 지가를 지난해의 2배까지 올리도록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표준지 공시지가를 수년간 시세의 70% 수준까지 끌어올릴 예정인데, 시세가 ㎡당 3000만원이 넘어 평당 가격이 1억원 이상인 고가 토지에 대해서는 한꺼번에 인상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감평사들이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자 이 관계자는 1회 상승률을 100% 정도로 맞추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표준지는 전체 공시대상 토지 3268만필지 가운데 대표성 있는 50만필지를 꼽은 것이며 공시지가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토지 보유세를 산정하는 기준이다. 특정 가격대의 토지만 공시지가를 올리면 자칫 과세형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감정원의 '2019년 표준지 공시지가'를 보면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 10개 필지 중 7개의 공시지가가 100% 뛰었다.

    서울 명동8길 네이처리퍼블릭 부지의 ㎡당 공시가격은 지난해 9130만원에서 올해 1억8300만원으로 100.4%, 명동길 우리은행 부지는 8860만원에서 1억7750만원으로 100.3%, 퇴계로 유니클로는 8720만원에서 1억7450만원으로 100.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고가 토지의 공시지가가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돼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에는 형평성을 개선하도록 정책 내용을 설명해줬지만, 일률적으로 얼마만큼 올리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준적은 없다"며 "100% 이야기 역시 일례를 들어서 얘기한 것일 뿐 모든 고가 토지에 대한 인상 지침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토부가 권한을 넘어 감평사들의 업무인 표준지 공시지가 산정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부가 예시로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지침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고가 토지만 지목해 시세 반영률을 높였다면 조세형평성과 재산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가 공시지가에 대한 최종 권한이 있더라고 공식문서를 통하지 않고 예시와 같은 형식으로 의사를 구두(口頭)전달했다는 부분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자료사진. 지난해 5월 기준 15년 연속 국내 최고 지가를 기록한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연합뉴스
    ▲ 자료사진. 지난해 5월 기준 15년 연속 국내 최고 지가를 기록한 명동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연합뉴스

    감평사들은 고유의 업역을 침범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 감평사는 "전문가로서 공시지가의 안정성과 파급효과를 고려해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며 "정부가 감평사들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사실상 표준지 공시가격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국토부는 '부동산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 및 최종 공시 주체로서 조사 업무를 감평사에 의뢰하면서 공시가격에 대한 정부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공시가격 조사·평가 보고서 심사 과정에서도 공시지가의 적정성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측은 "지난해 12월 회의는 표준지 공시지가 안을 심사하는 자리였고, 국토부 실무자가 감평사 등에게 그동안 시세가 급등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토지에 대해 공시가격의 형평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적정 공시지가를 위해 지역별로 네 차례 가격균형회의를 진행하는 등 감평사들과 수차례 회의를 거친 만큼 비싼 땅의 공시지가를 급등시키라는 지침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정부는 부동산투기 근절을 위해 시세 상승률을 적극 반영하고 특히 고가부동산의 세금탈루 등을 찾아내 형평성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한국감정원이 지난달 초 표준지 공시 예정가를 입력하는 전산시스템을 감평사들에게 제공하면서 '공시참고가격'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특정 부동산의 적정 가격 수준을 제시했다는 지적도 감정평가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감평사가 직접 실시한 결과를 토대로 표준지의 공시 예정가를 입력해야 하는데, 감정원이 미리 정한 참고가격을 제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공시가격 수준을 미리 정해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감평사들이 반발하자 감정원은 이를 사흘 만에 시스템에서 삭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감정원 측은 "감정원이 그동안 표준지 인근 지가 정보를 구축했는데, 마침 최근 완성돼 시스템에 반영했으나 일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삭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감정원이 표준지 인근 실제 거래된 부동산이나 감정평가가 이뤄진 부동산의 정보를 최근 취합했기에 이를 표준지 공시가격 산정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제시한 것일 뿐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현재 표준지 공시지가는 소유자 의견청취 절차를 밟고 있으며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 심의를 거쳐 내달 13일 최종 공시된다. 표준주택의 경우 이달 25일, 공동주택 공시일은 4월30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