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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눈앞에 두고 전자투표제를 운용하는 상장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주주권리 보호를 위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자투표는 도입 10년차를 맞은 올해가 사실상 안착할 수 있는 시기로 평가된다.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예탁결제원의 주총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하기로 계약한 상장사는 총 1204개사(유가증권 359개, 코스닥 845개)로 전체 상장사(2111개사)의 57%에 달했다.
전자투표 시스템 이용 계약사는 2015년(이하 연말 기준) 417곳에서 2016년 732곳, 2017년 1천103곳 등으로 꾸준히 늘어왔다.
전자투표는 주주가 주총장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2010년 5월부터 시행됐다.
반면 지금까지 상장사들은 전자투표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법적으로 강제사항도 아니고,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주총에 참석한 의결권 행사 주식의 찬성·반대 비율로 의결권을 대리 행사하는 섀도보팅 제도를 대다수 상장사들이 활용하면 기업의 주요 안건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7년 말을 기점으로 섀도보팅 제도가 일몰을 맞으면서 전자투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다.
사실상 기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주주총회 의결이 가능한 최소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했지만 초기 이같은 과정을 거치고 장기적으로는 주주권 강화에 큰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변함이 없다.
특히 올해 주총에서는 국내 증시를 이끌고 있는 대표주자들이 속속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하면서 주총문화에 큰 변화가 시작되는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달 20일 포스코에 이어 25일 SK하이닉스가 올해 주총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시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코스피 시가총액 2위, 포스코는 8위의 대형 상장사라는 점에서 이들의 움직임과 영향력은 업계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시총 상위 10개 기업 중 셀트리온과 한국전력 단 두 곳만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지만 대형 상장사들이 잇따라 참여하면서 전자투표에 대한 상장 기업들의 관심이 빠르게 커졌다.
지난해의 경우 SK그룹 4개사와 한화그룹 7개사, 포스코그룹 3개사, 두산그룹 3개사 등이 전자투표를 도입했고, 올해 들어서는 신세계그룹 6개사와 현대글로비스, 팬오션 등이 예탁결제원과 전자투표 이용 계약을 체결했다.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도 전자투표 도입이 임박했다는 평가다.
액면분할 전 24만명이었던 주주수는 액면분할 이후 67만명 수준으로 늘어난 만큼 올해 당장 전자투표 도입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다만 올해의 경우도 주총에서 전자투표 도입을 고려해봤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도입을 미루기로 했다고 밝히며 향후 주총에서 전자투표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전자투표 제도의 '실질적인 상용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를 주도하는 예탁결제원도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온오프라인 통합 투표 집계 등 부가 서비스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병래 예탁결제원 사장은 "섀도보팅 폐지 이후 주주총회 개최에 부담을 느끼는 발행회사를 돕기 위해 전자투표 이용 등을 적극 홍보할 것"이라며 "정부와 업계가 협업해 원활하게 주주총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예탁결제원이 개최한 '전자투표(K-eVote) 실무연수'에도 코스피 상장사 54개사와 코스닥 상장사 123개사 등 총 201개사가 참여했다.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기업들의 전자투표 실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연수는 신청자가 당초 예상보다 많아지자 3회차로 늘려 진행하기도 했다.
미래에셋대우도 전자투표 시스템 '플랫폼V'를 선보이며 이미 첫 번째 사용계약을 체결했다.
시총 약 870억원의 코스피 상장사 써니전자는 플랫폼V를 이용해 오는 29일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플랫폼V를 활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현재 의향서와 계약서를 포함해 약 200곳이 플랫폼V에 관심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자투표 제도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장사 IR 담당자는 "전자투표제도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고, 시스템의 접근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주주들의 인식 역시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자투표를 모든 주주에게 열어놓으면 회사 안건마다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자투표 참여율이 낮은 상황에서 선뜻 인력과 비용을 투입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