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만 좇기 바쁜 외식업계R&D 투자는 여전히 소극적
  • ▲ 피자업 1호점. ⓒ임소현 기자
    ▲ 피자업 1호점. ⓒ임소현 기자

    국내 외식업체들이 경쟁 심화와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다. 외식 트렌드의 급격한 변화나 정부의 규제 강화로 인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브랜드에 대해 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외식업계에 '미투' 메뉴 출시가 팽배하고 연구 개발 투자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업계 때문이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된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외식시장 부진에 따라 해당 기업들의 돌파구 마련이 속도를 얻고 있다. '한식뷔페'는 코너를 세분화하고 새로운 컨셉으로 탈바꿈한 매장을 운영하는 등 전문성 높이기에 나섰다. 패밀리 레스토랑 역시 새로운 트렌드인 가정간편식(HMR)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업계 특성상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는 외식 기업 입장에서, 성장 동력을 잃은 브랜드의 회생 방안을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할 성과 없이 다른 브랜드가 벌어들인 돈을 쓰기만 하는 그야말로 '아픈 손가락'인 브랜드들이 많아지면서 철수를 결정한 업체들도 많다.

    CJ푸드빌은 2006년 한국 진출 이후 2010년 66개까지 늘었지만, 높은 가격으로 경쟁력을 잃고 고전하던 콜드스톤 크리머리를 지난 2015년 결국 한국에서 철수했다.

    롯데제과가 운영하다 롯데GRS로 운영권을 넘겼지만 결국 다시 롯데제과로 돌려보낸 '나뚜루'도 있다. 나뚜루는 1998년 국내 런칭됐을 당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20~30대 여성층에 큰 인기를 끌며 성장해갔다. 2011년 롯데GRS가 운영을 맡은 후 주요 고객 연령대를 낮춰 ‘나뚜루POP’으로 브랜드명을 바꾸고 기존의 자연주의 대신 대중성을 강조한 나뚜루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매장 수는 지난해 57개로 2015년 167개와 비교해 1/3 가까이 줄어들었다.

    나뚜르는 결국 롯데제과로 돌아왔다. 7년만이다. 롯데제과는 나뚜루의 성장 전략 실패를 인정했다. 롯데제과 측은 "아이돌 그룹을 모델로 내세우며 10대 공략에 나섰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롯데제과는 8개월 간의 자체 브랜드 분석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 브랜드 최초 론칭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금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자연을 담은 아이스크림'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내세우는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다. 로고 리뉴얼은 물론, 품질 고급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상황이 7년 전과는 다르다. 업계 1위인 배스킨라빈스의 매장 수는 2017년 1326개 수준으로 나뚜루와 비교하면 20배가 넘는다.

  • ▲ ⓒ롯데제과
    ▲ ⓒ롯데제과
    현재는 잘 되고 있지만 막다른 길에 서 있는 브랜드들도 있다.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더 이상의 확장이 무의미하거나 정부의 규제 등에 가로막혀 확장을 할 수 없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빵집이 그렇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와 CJ푸드빌의 뚜레주르는 국내 베이커리 업계를 꽉 잡고 있는만큼 더 이상의 확장은 무의미하다. 이 때문에 객단가를 높여 '프리미엄화'를 추구하고 컨셉 변경을 시도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큰 성장폭을 기대하긴 어렵다.

    아이스크림 업계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배스킨라빈스도 더 이상의 확장은 무의미하다. 이 때문에 SPC그룹은 플래그십 스토어인 '배스킨라빈스 브라운', 컨셉 스토어인 '버블스 바이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운영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외식 기업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경우는 철수도, 확장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SPC그룹이 피자사업에 재도전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피자업(PIZZA UP)'은 첫 매장을 낸 지 1년을 넘겼지만 매장 확장은 결정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말 이미 나폴리피자 전문점 '베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피자사업에 재도전한 SPC 입장에서 피자업의 반응이 기대치를 밑돈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그룹도 자사 브랜드 운영에 있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외식 트렌드 변화는 물론, '오너리스크' 직격탄을 맞은 미스터피자의 실적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야심차게 내놓은 '식탁(SICTAC)'도 소비자 반응을 얻어내는데 실패해 1개 매장을 빼고 모두 철수했다.

    뿐만 아니라 990원 커피와 지하철 역내 매장을 공략해 단기간에 인지도를 높였던 마노핀 역시 2015년 52개까지 확장했던 매장 수가 2017년 기준 37개로 감소했다. 역사 내 매장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다른 저가 커피·베이커리 브랜드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성장 동력을 얻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마노핀은 런칭 11년만에 대대적으로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지만 향후 전망은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MP그룹의 영업손실은 2017년 109억8829만원 수준으로 적자 폭이 점차 늘고 있다. 미스터피자는 피자 도우 변경으로 과거 '수타 피자'라는 브랜드 고유성을 살리는 한편 치킨, 폭립 등 다양한 사이드 메뉴 출시로 성장 돌파구를 찾고 있다.

    앞서 '1세대'로 분류되는 한식뷔페들 역시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규모 축소에 나서고 있다.

    CJ푸드빌의 계절밥상은 2017년 54개 매장에서 지난해 29개 매장으로 대폭 감소했다. 자연별곡은 한식뷔페의 전성기였던 2016년 이랜드그룹의 실적 턴어라운드의 1등 공신으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당시 50개 중반 수준이던 점포 수는 48개로 줄어들었다.

    외식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한식뷔페 트렌드가 5년을 넘기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CJ와 이랜드가 한식뷔페 브랜드를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한식 뷔페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CJ푸드빌은 계절밥상의 컨셉 스토어를 오픈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즉석 조리 코너로 매장을 전면 재배치한 것이다. 가정간편식(HMR) 트렌드를 접목해 ‘계절밥상 간편별식’ 코너를 만들어 HMR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 ▲ ⓒCJ푸드빌
    ▲ ⓒCJ푸드빌
    자연별곡 역시 대상 종가집, 하이트진로음료 등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는 등 생존 전략에 착수했다. 매 시즌마다 코너를 업데이트하고 디저트 시장 증가세에 디저트 코너를 강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식뷔페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한식이라는 메뉴 자체가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지 않고 식품 당국의 뷔페 관리 규제도 강해졌다. 한식뷔페의 회생방안이 각 메뉴를 코너화한 컨셉스토어 형식으로 운영방식을 바꾸는 등 비슷하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CJ푸드빌의 '빕스'는 2014년부터 평균 80개 정도 매장을 유지하다 지난해 61개로 감소했다. 롯데지알에스가 운영하는 'T.G.I. 프라이데이스'는 2014년 40개였던 점포가 점차 줄어들더니 지난해 말에는 27개로 줄었다. '아웃백'은 2014년 109개에 매장 중 부진한 곳을 대대적으로 정리해 2015년부터 80개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 100개 이상을 운영하는 이랜드의 애슐리 매장 수도 감소세에 들어서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역시 한때 소비자들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큰 폭으로 성장했지만 외식 트렌드의 변화로 소비자 관심에서 밀려나게 됐다.

    빕스는 샐러드 특화 매장인 '빕스 Fresh up', 수제 맥주 특화 매장 등을 리뉴얼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에는 계산점을 핵심 고객 층인 3040 가족을 타깃으로 ‘Taste Up’ 콘셉트 매장으로 리뉴얼하고 '넥스트 모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애슐리도 최근 '키즈 패밀리 클럽'을 운영해 가족단위 고객 붙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실적은 상승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CJ푸드빌의 영업손실은 2017년 기준 38억원 수준으로, 적자 폭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랜드파크는 지난 2014년만 해도 9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2015년 185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한 뒤 2016년과 2017년 각각 130억원과 177억원의 적자를 봤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외식 기업들의 '아픈 손가락' 브랜드 탄생 이유가 연구개발은 뒷전이고 '미투' 제품 양상에 급급한 업계 생태계라고 분석한다. 외식업계는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 매출액 대비 1% 내 수준이다. 특성이 다르긴 하지만 식품제조 등 타 업계와 비교하면 최하위 수준이다.

    이처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 없이 최근 각 업체가 외식 트렌드를 좇는데 급급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별성을 크게 느끼지 못할 일원화된 외식 시장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일부 브랜드들은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면서 브랜드 런칭 초기의 고유성을 다시 살리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도 과거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었던 효자 메뉴들에 얽매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렌드 변화를 선도하고 연구개발에 힘을 쏟기 보다는 과거의 성공 신화에만 도취돼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떤 브랜드가 열심히 히트 메뉴를 만들어내면, 다른 브랜드들이 비슷한 메뉴를 만들어내고 심지어 운영 방식까지 비슷하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하면서 브랜드의 기본으로 돌아가겠다는 것 역시 소비자들이 왜 브랜드를 외면하는지 파악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식업계의 연구개발 투자는 사실 수년 전부터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며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개발 인력이 업계 내에 한정돼 있어 미투 제품 생산이 상당히 쉬운데, 이를 깨지 않으면 국내 외식 시장의 발전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