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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기업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이 국내외 연기금으로부터 반대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총회 소집공고 때 제시된 재무제표가 외부감사인의 감사를 거치지 않은 상태라는 지적이다. 매년 반복되는 문제인 만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17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운영하는 의결권정보광장 홈페이지를 보면 이달 15일까지 주총 정보가 게시된 89개 기업 중 56개 기업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이 1곳 이상의 해외 연기금으로부터 반대 의견을 받았다.
국내 기업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가장 많은 반대 의사를 표시한 곳은 'SBA of Florida(플로리다연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연금을 운용하는 이 기관은 ▲포스코 ▲LG유플러스 ▲현대건설 ▲신세계 ▲효성 ▲LG전자 ▲현대차 ▲기아차 ▲이마트 ▲삼성전기 ▲삼성SDI ▲대한항공 등 20여개 기업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했다.
모두 '감사를 받지 않은 재무제표(Unaudited financial statements)'라는 이유였다.
캐나다의 지역별 연기금인 OTPP(온타리오교직원연금)와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편이었다.
OTPP 측은 10여개 기업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하면서 "우리는 기업들이 재무 감사를 적시에 정확하고 분명하게 공개하도록 권장한다"며 "감사 완료에 대한 명확한 표시가 없다면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BCI 역시 ▲아모레퍼시픽 ▲기아차 ▲이마트 ▲GS리테일 ▲유한양행 ▲삼성전기 ▲DB손해보험 등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대해 "우리는 감사인의 의견이 없는 미감사 재무제표를 놓고 투표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며 해당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한다"고 밝혔다.
CalSTRS(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은 사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 기관이 투자한 국내 기업 대부분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KCGS 관계자는 "국내 규정상 주총 소집 공고 기한(주총 2주 전)이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주총 1주 전)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기업들이 감사를 거치지 않은 재무제표를 주총 안건으로 공시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해외 연기금들이 보기에는 정확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재무제표인 만큼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상장 기업들은 대부분 주총 전에 추가로 감사보고서를 제출해 승인받지만, 주주들로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확한 재무제표를 검토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또 주총 전에 전자투표나 위임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 감사를 받지 않은 재무제표를 토대로 판단해야 하는 만큼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섣불리 승인하기 어렵다.
이 관계자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등 해외 기관이 수년 전부터 한국에 개선이 필요한 제도 중 하나로 지적하는 부분"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감사를 받은 정확한 재무제표를 놓고 주주들이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국거래소 측은 "국내 기업의 결산기 재무제표 감사 기간이 매우 촉박한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현행 상법과 세법 등 큰 틀의 여러 제도와 연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주총 개최 시기나 소집공고 기한을 미루는 등의 대안을 모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